「인커밍」봄호 (기고 4) 공유지의 재발견, 공유부의 새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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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재발견, 공유부의 새로운 이해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판동초등학교 어린이 기본소득>; 공저자
지난 세기는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말처럼 ‘극단의 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커다란 극단의 모습은 ‘진보와 야만’이라는 말에 잘 담겨 있지만 인간의 살림살이를 조직하는 데서도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소유 및 전반적인 계획에 따라 인간의 삶의 조건이 주조되었고,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시장이 이를 지배했다. 그리고 지난 세기말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의 종말과 함께 시장 지배 체제는 전 지구적 지배의 끝자락을 향해 진군했다.
하지만 바로 그 시기에 인간의 오랜 삶의 조직 방식인 공유지와 공유화가 새롭게 등장하고, 또 발견되었다. 공유지(commons)는 ‘공통적인 것, 공동의, 공유의’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communis에서 온 것으로 ‘함께 일하다, 함께 책임지다’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로마 후기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사유물(res privatae), 공공물(res publicae), 무주물(res nullius)과 함께 공유물(res communis)을 재산의 한 형태로 규정하는데, 여기에는 토지, 공기, 물, 바다, 해안 등이 포함되었다. 이는 자연법이나 유산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중세 잉글랜드에서는 어떤 공동체가 법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용하는 것이 인정된 자산이었는데, 여기에는 보통 초원, 어장, 숲, 토탄지 등이 포함되었다. 이를 규정한 역사적 문서가 <삼림헌장>;(1217)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과 <삼림헌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공유지라는 것이 특정 개인에게 속하는 게 아니며,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것이고, 이는 자연(혹은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거나,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어떤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의 중요한 권리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역사, 특히 근대 이후의 역사는 이런 공유지를 빼앗기고 부정당하는 역사였다.
공유지의 재발견
공유지의 재발견은 공기가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공기가 우리 삶에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살면서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어떤 것이 이른바 민영화와 상품화 과정에서 박탈당했을 때 우리는 공유지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20세기 말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우선 신자유주의의 확산 속에서 공적으로 제공되거나 공유지로 이용되던 것이 민영화, 상품화되었다. 가장 악명 높은 게 물의 민영화였다. 1999년 볼리비아 중부의 코차밤바의 수도가 국제 컨소시엄의 민간 회사로 넘어갔고, 이 회사는 물 가격을 세 배나 올렸다. 그러니 이에 대한 저항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거리 시위, 도로 봉쇄, 총파업으로 맞섰다. 이른바 물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남반구에서는 토지 탈취도 늘어나, 땅을 잃은 농민들이 생겨났다. 여기에 지식재산권을 통해 다양한 재화, 인간의 활동, 더 나아가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전유 및 지대 추구가 늘어났다.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 자본주의의 등장 속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확대되어 왔다.
공유지에 대한 침해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공유지 속에서 살아가는 공유자(commoner)였는지를 알게 했다. 공유지에는 전통적인 자연적 공유지인 토지, 물, 바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형성된 수많은 공유지가 있다. 사회적 공유지(우편, 대중교통과 도로, 공원 등), 시민 공유지(사법, 치안), 문화 공유지(공공건축, 도시 경관, 공공장소), 지식 공유지(정보, 지식, 교육)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민영화와 상품화는 이런 공유지도 침해하고 포획하고 있다.
민영화와 상품화의 형태로 벌어진 공유지의 침해에 대해 사람들은 ‘새로운 인클로저’ 혹은 ‘제2의 인클로저’라고 부르며 저항했다. 영국에서 농민들을 토지에서 쫓아냈던 16-19세기의 역사적 사건이 공유지 약탈 속에서 환기된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의 “공유지를 되찾자!”라는 주장이다. 클라인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는 전 지구적 저항 운동을 공유지 관념과 연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공유지의 재발견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오기도 했다. 자본주의와 시장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는 시장을 통해 작동한다. 시장 중심의 경제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교환 관계가 들어가는 경제 형태인데,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사람들은 보통의 상품뿐만 아니라 노동력도 매매하는 것으로 되었다. 노동력을 구매한 자본가는 이를 이용[착취]하여 이윤을 올린다. 이것이 보통 이해되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다.
하지만 공유지에 대한 침해를 보면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자유로운 노동력에 대한 착취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외부에서 만들어진 공유지 자체를 강탈하고 포획하는 방식으로 축적을 이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자신이 만들어내지 않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적 제도 등에 대한 인클로저를 통해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공유지 자체에 대한 관념도 바꾸었다.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공유지를 강탈하고 포획한다는 것은 공유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다시 말해 공유지는 과거에는 있었으나 이제는 사라진 역사적 잔존물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공유화(commoning)가 주요한 요소이자 개념으로 등장했다. 공유화란 공유자들이 무엇이 공유지인지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하며, 이 속에서 공유자로서의 감각과 공유자들 사이의 유대를 강화한다.
공유지에서 공유화를 중요한 요소로 볼 때 공유지는 새로운 생산양식 및 삶의 방식이라는 전망을 가질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이탈리아의 마시모 데 안젤리스인데, 그는 거의 모든 것이 공동의 부(common wealth)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유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공유부의 새로운 이해
21세기 전환기에 새롭게 부상한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혹자의 말에 따르면 간단하고 강력한 아이디어이다. 모두에게 그저 돈을 주는 일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 간단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정당화하기가 까다롭기도 하다. 노동-소유 및 이에 기초한 호혜성이라는 근대의 지배적인 관념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뭔가를 준다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한가?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관련해서 자유의 사전 분배로서의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공화주의적 논변과 실질적 자유의 증진을 위한 도구로서의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이 있다. 하지만 둘 다 어떤 정당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을 바라보고 있지 기본소득 그 자체의 정당성을 논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소득을 그 자체로 정당화하는 논리는 공유부의 배당으로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유(私有)와 공유(共有)에 대한 종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사실 오늘날 신성시되고 있는 사유재산은 원천적 공유에 기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유재산인 토지는 인간의 삶의 터전인데, 이는 어떤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인간에게 말 그대로 주어진 것이다. 사유재산제의 옹호자인 로크에 따르면 이런 토지에 누군가의 노동이 더해져 그(녀)의 재산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원천적 공유가 사유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해서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의 정당성을 주장한 사람이 18세기 말의 토머스 페인이다. 그는 소유가 ‘자연적 소유’와 ‘인공적 소유’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로크를 따라 개인의 노력에 의해 인공적 소유를 인정함에도 그 밑바탕에는 모두에게 속하는 자연적 소유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의 소유는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사유재산의 소유자는 자연적 소유분에 대해 공동체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페인은 이런 사유재산에 대해 상속세 10퍼센트를 거두어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으로 모두에게 동등하게 지급하자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페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유재산이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사회적 효과’에 의해서도 발생한다는 점을 말한다. 협업을 통해 생겨나는 ‘집합적 힘’이나 플랫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 같은 것들이 사회적 효과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원천적 소유나 사회적 효과에서 발생하는 부의 분배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이것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귀속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천적 소유는 세대를 넘어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며, 사회적 효과는 집합적 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원천적 공유와 사회적 효과에서 발생하는 부, 즉 공유부와 기본소득의 원리가 만나게 된다. 공유부에서 나온 수익은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분배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분배할 수 없다.
공유지와 공유부의 미래
오늘날 공유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은 공유지의 재발견과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진전 속에서 그동안 당연시되던 공유지와 공유부가 강탈당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에 대한 저항 속에서 공유지와 공유부가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디지털 자본주의 및 인지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공통의 생산물 혹은 공통의 부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커졌다. 모두에게 속하는 자연적 공유지와 사회적 공유지가 있으며, 이 속에서 모두에게 속하는 부가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한편으로 극심한 자산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이고, 다른 한편으로 생태계의 붕괴이다. 물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출된 지 오래다. 그 가운데 공유지와 공유부에 근거한 것이 기본소득 및 기본소득 방식의 다양한 정책이다. 조세에 기반한 보편적 기본소득, 공적 투자와 공유지분권에 기초한 배당, 토지보유세와 배당, 탄소세와 배당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정책들은 구체적인 목표와 운영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불평등을 완화하고, 모두에게 적절한 삶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공유지와 공유부에 기반한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을 실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눈이 밝은 사람들은 공유지와 공유부의 영어 단어인 commons와 common wealth가 공동체와 공산주의를 뜻하는 community 및 communism과 같은 어원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0세기를 거치면서 공동체라는 말은 과거의 유물로, 공산주의라는 말은 상종하지 못할 극악한 어떤 것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런 역사의 포연을 거둬내고 찬찬히 살피면 공유지, 공유부, 공동체, 공산주의 모두 인간의 공통성을 상정하고 그 공통성을 더 높은 차원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인간 혹은 인류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어떤 공통성에 기반한 것이다. 물론 그 공통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고, 이것이 정치적, 문화적 경합을 구성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분열과 해체 그리고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인간이 정치적,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면, 분열과 해체 이후에도 우리는 인간일 수 있는가? 인간 삶의 기반인 생태계가 붕괴된다면 인간 삶의 조건은 무엇일 수 있을까? 공유부와 공유지, 그리고 기본소득은 이런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인식과 실천의 틀이자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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