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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커밍」 가을호 ⑪ 대기본소득시대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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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작성일 : 2023.10.1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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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본소득시대를 맞이하며

- 전체세션 ‘한국의 기본소득’ 참관기


황법량(기본소득당 광주지역조직국장)


대기본소득시대


한 해적의 사형집행을 보기 위해 모인 군중 속에서 누군가 외친다. 

“이봐 해적왕, 모아둔 보물은 모두 어디에 숨겼나?” 

그러자 해적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내 보물 말인가? 원한다면 줄 수도 있지. 찾아봐라 이 세상 전부를 그곳에 두고 왔으니.” 


그 말에 군중은 환호하고 사람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바다로 나간다. 대해적시대가 열린다. 유명한 만화 <원피스>;의 세계관이 시작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역사 속 많은 사례들을 떠올린다. 선구자의 희생이 있고 나서 결국 수많은 이들이 그 선구자의 길을 따라 도전한다는 서사에 나는 여전히 가슴이 뛴다. 

8월 25일, 비엔대회 다섯 번째 전체세션 ‘한국의 기본소득’은 최근 한국의 대표적인 기본소득 실험과 운동을 소개했다. 발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대기본소득시대’라는 말이 떠올랐다. 각자의 방법으로 기본소득이라는 보물을 찾아 나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판동초 어린이 기본소득 실현과 의미


판동초등학교는 충북 보은군에 있으며, 학교 주변에 학생을 위한 마땅한 편의시설이 없다.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한 교사가 주도해 협동조합 방식의 학교매점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초등학생 대부분은 소비할 돈이 없어서 소수만 매점을 이용했다. 이것이 문제라고 여기던 차, 학교에 약간의 기부금이 들어왔고 이 돈을 이용해 모든 학생에게 매주 2천 원씩 매점쿠폰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판동초 어린이 기본소득’ 실험이다. 

이지수 군산대 교수의 발표는 판동초 실험을 공유지와 공유부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고찰했다. 이 교수는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한 후 학생들이 어떻게 학교매점을 여가의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는지, 이 경험으로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다른 활동들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주목한다.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은 기본적으로 자유가 없는 존재다. 우리는 청소년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자유도 함께 보장하는 방법을 아직 구현하지 못했다. 학교와 집이라는 공간적 제약, 경제적 무능력 상태로 인한 생활반경의 제약은 청소년에게 갇혀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상태를 고려하면 매주 2천원의 자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소개된 학생의 인터뷰를 보면, 자유롭게 친교를 나누고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노예상태의 인간이 자유를 얻고 사회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역사 속 사례들을 떠올렸다. 이 실험을 주도한 교사가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면 판동초 기본소득이 지속되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역사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그 성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긴장감까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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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청년기본소득 실험의 의미


부산 청년기본소득 실험은 재단법인 부산형사회연대기금에서 주관하여 부산 거주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프로젝트이다. 2021년에 14명을 선발해 매월 100만원을 지급했으며 2022년에는 10명을 선발해 매월 100만원을 지급했다. 발표자 서정희 군산대 교수는 기본소득의 경험이 피실험자들의 노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목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근거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노동’이다. 보수적 입장에서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누구도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있다면, 사회운동 일부에선 ‘노동자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찮은 기본소득 수급자의 삶’이라는 멸시가 있다. 서정희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입장에 반례를 들이밀고 있다. 

기본소득 지급 후 일부 피실험자들은 노동시간을 줄였지만 다수는 원래 시간을 유지했거나 오히려 늘렸다. 기본소득을 이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필요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피실험자들은 더 나은 존재로 자기를 계발하는 데 지급받은 돈을 투자했다.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하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이 실험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이용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사회적 조건과 분리할 수 없는 사람의 심리를 설득하려면 이런 편견을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악마분장을 하고 선행을 권유할 수는 없다. 이 실험은 우리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에서 농민기본소득의 실현


농민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2020년대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이 어떤 상징성을 가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본소득주의자로서 드는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접어두고,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보편적 복지 실현’의 지향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로서 농민 기본소득을 수긍한다. 무상급식 정책에 동의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농민기본소득 개념을 일부 수용해 농민수당 또는 농어민 공익수당이라는 이름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이러한 제도를 시행 중인 지자체의 숫자가 40개를 넘었으며 현재도 늘어나고 있다. 다른 어떤 기본소득 운동도 이 정도의 제도화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세션에서 박웅두 농어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의 발표를 들었다. 박웅두 위원장은 운동본부의 출발과 성과, 향후 방향을 소개했다. 그런데 발표를 들으니 단체 이름인 ‘기본소득’과 단체의 성과로 제시한 ‘수당’ 사이에 간극이 보였다. 차라리 농어민수당전국운동본부라는 명칭이 제도 확산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간극은 분명히 한계이지만 한편으로 기본소득이 한국에서 가진 위상을 보여준다. 특정 집단의 권익을 위한 사회운동에서 운동주체는 그 집단의 이익이 어떻게 전체의 이익과 연결되는지 설명해야 한다. 운동본부는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설명하는 한편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농민기본소득이 있다고 강조한다. 어느덧 기본소득은 언젠가 실현해야 하는 목표로 우리 상식 속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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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본소득 운동의 정치적 도전


세션의 마지막 순서는 기본소득당의 활동과 전략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는 기본소득당의 정치운동을 다음의 세 가지 방향으로 요약했다. 첫째, 각종 사회문제의 ‘임무 지향적 해결책’으로서 기본소득을 제시하는 것(기후위기 해법으로서 기본소득 탄소세 등). 둘째, 기본소득에 동의하는 이들과 폭넓은 정치연합을 구성하는 것. 셋째, 기본소득 자체는 아니지만 ‘기본소득 정신’에 따라 인간의 존엄과 관련된 의제에 적극 결합하는 것.

나는 기본소득당이 보여준 행보가 대한민국 진보정치세력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안타깝게도 그 기본조차 보여주지 못한 세력들이 많다). 기본소득당 정치인은 자신의 의제를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다방면의 의정활동을 다룰 능력도 증명했다. 최근 신입당원 숫자로 표현되는 지지세의 증가는 그러한 과제를 어느 정도 달성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는 일은 어렵다. 선언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 어려운 과제를 마주한 여타 진보정당들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지만 기본소득당은 그럴 수 없다. 기본소득당을 주목하는 많은 시민들은 여전히 기본소득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면서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기본소득의 힘과 나의 다짐


발표자들이 소개한 기본소득의 실험과 운동은 흥미롭게도 모두 다른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고민, 재단법인의 사업기획, 농업정책 전문가의 연구, 정치세력의 창당도전. 이 각각의 여정이 한 지점으로 모인 건 기본소득이라는 상징이 가진 힘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이렇듯 이미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기본소득으로 누리게 될 자유를 꿈꾸며 스스로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여정을 떠나고 있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어려운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을 움직이게 만든다. 기본소득은 2020년대의 한국사회에서 그 힘을 가진 상징이다.

화려한 풍경을 감상한 후 나의 시선은 스스로에게 돌아왔다. 이 시대에 내가 맡을 역할을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이 세계관에 어울리는 등장인물이 되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킬 계획을 세웠다. 비록 그 노력의 결과가 당장 두드러지지 않더라도, 대기본소득시대의 일원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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