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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커밍」 가을호 ⑭ 오준호의 기본소득 리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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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작성일 : 2023.10.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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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호의 기본소득 리스타트


오준호 공동대표가 중기이코노미에 기본소득 칼럼 ‘오준호의 기본소득 리스타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 편을 본지에 싣습니다. (중기이코노미 https://www.junggi.co.kr)



기본소득은 ‘한반도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지난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었다. ‘전쟁을 잠시 멈춘다’는 정전협정 체제에서 전쟁 상태를 완전히 끝내는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누구나 바랄 것이다. 하지만 정전협정 70주년에 부산에는 미 핵잠수함이 입항하고, 평양에선 중국과 러시아 외교관을 불러 탄도미사일을 과시했다. 남북한은 각각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동맹 강화를 부르짖었다. 한반도는 냉전의 해빙은커녕 도리어 ‘신냉전’으로 들어서고 있다.

엄중한 안보 현실 때문에 ‘평화를 위해선 힘이 최우선’이란 주장으로 기울기 쉽다. 그러나 국방력은 전쟁을 잠시 미루는 조건일 수 있어도 평화를 앞당기는 수단은 아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평화를 통해 얻는 이익을 늘려야 한다. 남북한이 협력해 공동의 경제이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평화의 길이다. 이익 공유 시스템과 강한 안보는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일이 아니다.

특히 기후위기처럼 국경을 초월하는 문제에는 남북한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후위기 대응이 남북한 협력의 좋은 물꼬가 될 수 있다.


개마고원 재생에너지 개발수익을 기본소득으로


한국의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현 25기가와트 수준에서 500~600기가와트 수준으로 늘리고, 약 2800만 톤가량 그린수소(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수소)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좁은 국토에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려니 땅값도 땅값이거니와 어려움이 크다. 재생에너지로 겨우 전력을 충당하면 수소는 별도로 수입해야 하는데 비용이 막대하다.

북한 개마고원 일대를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로 개발하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개마고원은 총면적 4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곳은 태양광, 풍력 자원은 물론 수력 자원까지 풍부한 천혜의 보고이자 ‘한반도 공유부’다. 개마고원의 태양광 자원 잠재량은 1000기가와트로 2050년 한국에 필요한 500기가와트, 그 3분의 1인 북한의 필요량을 채우고 남는다. 또 개마고원에서 얻은 재생에너지로 2050년 남북한에 필요한 그린수소를 모두 생산할 수 있다. 초과 생산한 전력과 수소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판매하면 된다.

개마고원 재생에너지 공동개발에 드는 비용은 200조 원으로 추산되며, 추후 경제적 효과는 최대 2000조 원에 이른다(아시아개발은행 김대영 컨설턴트, 2022). 사업이 성사되면 2050 한국의 탄소중립과 에너지 자립은 물론, 남북한 공동번영의 기반을 탄탄히 닦을 수 있다.


북한의 태양광 발전 잠재력


물론 첫 삽을 뜨려 해도 현재의 남북한 긴장이 완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한이 사업 논의를 일단 시작한다면 긴장 감소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국제개발은행 등 국제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북한에 구체적 제안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또 하나 관건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도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협력 사업들이 중단된 데는 북한 정부의 폐쇄성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한국 정부가 사업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부족한 탓도 있었다. 한국 정부로서는 국내 여론이 남북협력을 강하게 지지하지 않는 한 적극 나서기 어렵고, 국민은 남북협력이 자신에게 상징적 차원을 넘어 실질적 이익이 된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를 반전시킬 방안이 필요하다.

그 방안은 남북협력개발의 이익을 한국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배당하는 것이다. 이를 ‘평화배당’이라고 부르자.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개발기금’을 조성해 그 기금으로 개마고원 재생에너지 공동개발에 투자한다. 기금의 원천이 국민 세금이므로 모든 국민에게 배당계좌를 주고, 국민이 원하면 개별적으로 또는 집합적으로 더 투자해서 추가 수익을 얻게 한다.

재생에너지를 본격 생산하면 개발이익은 바로 국민의 소득향상으로 돌아온다. 한국 국민들은 남북협력을 상징적 이유뿐만 아니라 실질적 이유로도 지지할 것이고, 한국 정부도 더 적극적으로 남북협력에 나설 것이다. 남북이 공동개발하는 만큼 북한 주민도 기본소득을 받아야 하겠지만, 북한 정부에게 개발이익의 사용방식을 강제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단, 무기 개발이 아닌 경제개발과 주민복지 향상에 쓸 것을 사업추진 조건으로 북한에 요구할 순 있을 것이다.


DMZ엔 평화공원을, 접경지대엔 소득보장을


이번에는 비무장지대로 눈을 돌려보자. 비무장지대(DMZ)는 정전협정에 근거해 남북 군사충돌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설정한 구역이다. 이름과 달리 남북이 중무장한 채 서로 감시하는 지역이고, 손때 묻지 않은 자연이란 통념이 무색할 만큼 군부대의 지뢰 살포, 폐기물 투기, 불법적 수렵채취 등으로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비무장지대가 남북한 대치의 최전선이라 생기는 문제다. 그래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하는 방안, 곧 남북이 비무장지대를 공동 활용하거나 개발하는 방안이 꾸준히 제안됐다. 비무장지대를 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들자는 제안은 1971년에 처음 나왔다. 비슷한 제안이 많았지만 실행되지 못한 건 북한과 협의 없는 남한의 일방적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비무장지대 가까운 접경지대 주민이 논의에서 배제된 것도 문제다.

비무장지대를 유엔 등 국제사회의 협조 속에 세계적인 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들고, 남북한 접경지대 주민들이 일정한 프로토콜 하에 공원을 공동 관리하면 어떨까. 생태평화공원 관광수입 등 이 구역의 평화적 이용에 따른 수익은 남북한 접경지대 주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제공하자. 현재 고령화와 소득감소로 불안정한 접경지대 주민들에게 평화공존의 관리자 임무를 맡기고, 그들의 소득안정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뽑고 평화를 심자.

기본소득은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사명 지향적 해법’으로 제안됐다. 우리 앞에 놓인 도전 과제에 대해, 기본소득과 다른 해법들을 연결하면 문제 해결의 길이 보인다.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이라는 과제를 달성하는 데도 기본소득은 큰 몫을 할 것이다. (2023.8.7.)





열대 우림 지키려면 ‘지구 보존 기본소득’ 주자



중국 광시성 장족자치구에 있는 쿠난 마을에선 주민 110가구 450여명이 여의도 세 배 크기 땅을 공동으로 관리하며 살아간다. 마을은 300년이 넘은 풍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숲에는 멸종위기종인 긴꼬리원숭이가 서식한다. 풍수림은 홍수나 산사태로부터 일대의 농경지를 보호하는 기능도 톡톡히 한다.

주민들은 대대로 풍수림을 보존하며 거기서 생계 수단을 얻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쿠난 마을에 토지 공동소유권을 인정했다. 주민들의 결정에 따라 외부인은 숲에서 벌목과 경작을 할 수 없으며 출입도 주민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신 주민들은 정기적으로 마을에 소규모 인원을 받아 환경교육 캠프를 연다. 캠프 운영수익 일부는 마을기금으로 적립하고 나머지는 주민들이 공평하게 나눈다. 쿠난 마을은 생태환경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토착민과 지역공동체의 생존도 보호하는 하나의 사례다. 

하지만 세계 주요 보호지역에 거주하는 토착민들의 사정이 모두 이처럼 좋지는 않다. 아마존 열대 우림의 원주민, 아프리카 평원의 소몰이꾼, 인도네시아 해안에 사는 어부 등 환경 파괴와 빈곤에 위협 당하는 토착민이 더 많다. 원주민이 생계 수단을 찾아 고향을 떠나거나, 단기적 이익을 좇아 숲을 마구잡이로 베는 대신, 환경을 보존하면서 생존권과 집단정체성을 지키는 지구적 차원의 해법이 있을까? 있다. ‘지구 보존 기본소득’이라는 제안이 그것이다. 


자연과 토착민을 함께 지키는 ‘보존 기본소득’


2023년 5월 국제 저널 ‘네이쳐 서스태너빌리티(Nature Sustainability)’에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지구 보존 기본소득’이란 논문이 실렸다. 논문 저자들은 지구상 환경보호지역에 거주하거나 생계를 위해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지구 보존 기본소득(global conservation basic income)을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지역을 개발하지 말고 보존하는 대신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각국 정부는 생태환경 보호나 탄소 감축을 위해 보호지역을 설정한다. 그러나 원주민과 지역사회에 대한 대책은 제대로 세우지 않는다. 원주민은 생계를 위해 살던 곳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거나, 보호지역의 천연자원을 남용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집단정체성을 부여한 공동체 문화는 해체된다. 그런데 원주민 공동체가 사라지면 생태환경이 때로 더 나빠진다. 토착민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지식으로 환경을 관리해왔는데, 그 일을 할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쿠난 마을은 생태환경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토착민과 지역공동체의 생존도 보호하는 하나의 사례다. 또, 열대 우림이 광대한 인도네시아에서 수십만 극빈 가구에 조건 없이 현금을 주었더니 삼림 벌채가 감소한 일도 있었다. 

 보존 기본소득 제안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지역 환경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면서 환경 보존 활동을 계속하도록 돕자는 것이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지구 절반을 자연 상태로 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더욱 보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또 보존 기본소득을 받으면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여유가 생기므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진다. 튼튼한 지역사회는 외부에서 오는 개발 압력이나 유혹에 저항할 힘을 가진다. 

논문은 보존 기본소득의 실행 시나리오를 여러 가지 제시한다. 보존 기본소득을 지급할 대상은, 적게는 2억3000만명에서 많게는 16억명이다. 전자는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의 보호구역에 한정한 인원이고 후자는 모든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지구 육지 44퍼센트의 면적에 거주하는 모든 이를 포용한다. 

보존 기본소득 지급 액수도 소액부터 넉넉한 수준까지 다양하게 제시된다. 어디 살든 세계 빈곤 기준인 5.5달러(7300원)를 똑같이 지급한다는 계획부터, 국가별로 1인당 국내총생산의 25퍼센트를 지급하는 과감한 계획도 있다. 이를 종합하면 보존 기본소득에 드는 예산은 매년 최소 3500억 달러(460조 원)에서 최대 6조 7300억 달러(8900조 원)에 이른다. 

엄청난 돈이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보자. 연구에 따르면, 세계 경제 생산에서 자연에 의존하는 비중은 44조 달러(6경 원)나 된다. 여기에 자연이 제공하는 문화적·무형적 가치와 보존 기본소득이 인간의 행복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더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보존 기본소득 예산이 비록 크더라도 가성비가 충분하며, 실은 세계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현명한 투자라고 하겠다. 화석연료 등 유해 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이 세계적으로 연 5000억 달러(650조 원)인데, 이것만 줄여도 소규모 보존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은 바로 마련할 수 있다. 


지구를 ‘모두의 정원’으로 가꾸려면


지구 보존 기본소득의 실제 효과를 알 수 있는 증거는 당연히 아직 없다. 하지만 낙관할 만한 사례들은 있다. 가령 열대 우림이 광대한 인도네시아에서 수십만 극빈 가구에 조건 없이 현금을 주었더니 삼림 벌채가 감소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잘 설계된 시범사업을 실시한다면 더 많은 증거가 모일 것이다. 또 재원 마련에 있어 산업 선진국이 더 큰 의무를 부담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산업 선진국은 지구 온난화에 더 큰 책임이 있고, 보호해야 하는 지역은 저소득·중간소득 국가가 더 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보존 기본소득을 원주민에게 주는 보조금이 아니라, 자연환경을 보존함으로써 모두를 위한 지구에 기여한 이들에게 주는 ‘정당한 몫’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원주민 공동체와 국가, 나아가 국제사회의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원주민은 보존 기본소득의 수동적 수혜자로 머물러선 안 된다. 그들은 이 지구를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모두의 정원’으로 가꾸는 사람들이다. (2023.9.6.)


참고자료 : 

Emiel de Lange 외, ‘A global conservation basic income to safeguard biodiversity’ (nature sustainability 6), 2023.5.18.

조효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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