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가을호 ⑦ 과감하고 발칙하고 유쾌한 기본소득 혁명
페이지 정보
본문
과감하고 발칙하고 유쾌한 기본소득 혁명
- ‘청년 정치와 기본소득’ 세션 참관기
한인정(기본소득연구소 연구실장)
원고를 의뢰받고 행사 현장에 갔는데, 거기 있는 동안 이 글을 쓰는 일이 점차 막막해졌다. 이 훌륭한 기본소득 운동가들의 출사표에 ‘가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글은 ‘삶에서 기본소득을 끌어낸 경험’이며, 한 문장 한 문장에는 균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구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현장에선 취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저 이야기에 집중하며 손뼉 치기 바빴다. 나만 이런 느낌을 느끼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류보선 교수(군산대, 문학평론가)는 “저는 예전에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 대해 꽤 부정적이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야 기본소득이 올 수 있다고 했는데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은 당시 상황을 표현하기에 적확했다. 생래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며, 힘들어도 이 시간을 즐겁게 넘어설 에너지를 가진 ‘기본소득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지면의 한계로 이야기를 요약했지만(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꼭 본문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상의 세계에 있는 기본소득을 현실로, 그리고 자기 몸으로 끌어낸 청년 7명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 청년 정치 세션 발표자 원고는 기본소득당 홈페이지(https://www.basicincomeparty.kr/)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삶
“부모님이 노동조합 활동가셨습니다. 해고는 말 그대로 ‘살인’이었습니다. 회사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시작했고 소득이 증발했습니다.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는데, 딸기잼을 아끼려고 매우 얇게 펴 발라 먹었습니다. 불안이 제 삶을 뒤흔들었습니다.” (김한별)
“교무실 칠판에 무료급식 대상자 명단이 붙어있는 것을 봤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무료급식을 받고 있다는 것이 공개되는 것이, 나쁜 일을 하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신지혜)
“성폭력과 데이트폭력을 겪었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했으며, 혼자 상경해 비좁은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은 그 막연한 불안을 여성 혐오라는 언어로 설명해주었습니다. 개인의 문제가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삶은 바닥부터 산산이 조각났습니다.” (윤김진서)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순탄하게 흘러온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따라온 불안은 상흔이 되어 그 그림자만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도 삶은 다시 부서졌다. ‘열심?’ ‘열심히 일할수록’ 불안정해지는 블랙홀 속에 살았다. 이들은 이러한 고백이 자신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외쳤다.
“대구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주소지를 수성구로 옮기기 위해 (위장) 전입신고를 하기 일쑤였고 집값만큼 학원비도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삶이란 수성구를 거쳐 강남에 가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방편도 없었습니다. 여러 번 그 경쟁 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것은 ‘이 판을 벗어나더라도 또 다른 경쟁 판 위에 놓일 것’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그 말은 꽤 오랫동안 의지를 억눌렀습니다.” (신원호)
“제 주변엔 집을 나오고 싶은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부모의 폭력이 싫어서’, ‘나답게 살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집을 나온 청소년 동료에게 ‘같이 고민해보자’라고 했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청소년인 우리에게 ‘자립’이라는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양지혜)
“생존경쟁은 공동체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돈마저 없다면, 치열한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무력해집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집니다. 사회적으로 응원받지 못하는 행동도 하게 되죠.” (서태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과 절망을 오가며 ‘어쩔 수 없는 적응’이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이는 시대다. 배타적인 극우세력은 그 심리를 틈타 득세한다. 비집고 서 있을 수도 없는 세상에서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보다 반항을, 적응보다 대안을 찾아 나섰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코로나 19에 일자리를 제일 먼저 잃어야 했던 노동자들,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되는 청소년들, 내쫓기는 철거민들, 장애인들, 빈민들, 페미니스트들…. 소수자였던 자신 그리고 바로 옆에 서 있는 소수자 동료들과 함께였다.
“성소수자 차별이 만연하고 생활동반자법조차 없는 나라에서, 그것도 대구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열기 위해 연대합니다. 또 장애인 활동가들과 함께 차별과 맞서고 동등한 시민의 권리를 쟁취하려고 노력합니다. 빈곤의 상황에서 지원받을 매뉴얼이 아닌 누구나 빈곤하지 않을 최저선을 만드는 활동에도 함께 합니다.” (신원호)
“우리 삶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다른 삶과 공명하는 불안은 더 나은 삶을 상상할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차별과 부정의의 맥락은 저를 무력하게 했지만, 한편으로 더 많은 이의 삶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 충격과 깨어짐의 과정을 통해 저는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동료들과 구조적 부정의를 바꾸어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유니브페미라는 대학 페미니스트 단체를 만들었고, 혐오표현의 문제를 고발하고 연구했습니다.” (윤김진서)
“그럴 능력이 돼? 제가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한 후 줄곧 들었던 말입니다.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에도 능력 있으면 괜찮지 같은 말이 따라붙습니다. 저는 능력이 있거나 대단해서 대학거부자나 페미니스트가 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여성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능력주의가 만든 차별과 불평등에 주목하는 운동입니다.” (양지혜)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것만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더 나은 삶을 향할 수 없다는 감각(김한별)’은 여전했다. 다른 세상을 꿈꾼다며 여전히 ‘능력주의’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도 있다. 늘 한발 늦은 정책과 제도는 투쟁의 지속가능성을 낮췄다. 결국 사회를 바꿀 전망이 텅 빈 느낌(김한별) 속에서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물러설 수 없는 잔혹한 외로움의 시간(신지혜)에 빠질 때도 있다.
가능성에 ‘가능’을 부여하는 일, 기본소득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그 틈에 애타고 있을 때였다. 기본소득은 ‘나의 판을, 세상의 판을 뒤집어엎을 힘’(신원호)처럼 다가왔다. 그때의 전율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들은 밤잠을 즐겁게 설치며 더 많은 연대를 상상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자격 없이도’ 꿈틀거리는 이들의 저항에 밤잠을 즐겁게 설쳤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제공할 심리적 안정감과 그로 인해 가능해질 더 많은 연대가 떠올랐다.
“페미니즘과 기본소득이 만나면 고루한 차별을 향한 새로운 질문이 큰 파괴력을 갖게 됩니다. 가족 관계 속에서 ‘여성’이 아닌 여성도 인간이라는 페미니즘적 접근과 개인의 존엄을 만나는 기본소득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윤김진서)
“기본소득이 있다면 해고가 살인일 수 없고 노동이 소득 또는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게 됩니다. 노동조합은 현장을 바꿔낼 더 유의미한 요구를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 (김한별)
“기본소득은 자격 없는 이들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여성, 청소년, 퀴어,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입니다. 미성숙하고, 능력 없고, 자격 없는 이들로부터 시작하는 정치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양지혜)
이러한 상상은 기본소득이 삶의 불안정성을 해소해주며, 저 너머의 세계를 ‘지금-여기’로 끌고 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즐거운 상상을 현실에 실현하기 위해선 여기 모인 일곱 명뿐 아니라 우리 모두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특히 선거에서 시민을 설득하기 위한 지혜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미 있을지도, 혹은 저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언어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껏 우리에게 익숙한 절망의 언어를 희망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다.
부동산 관련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부동산만이 유효한 대안이 되어버린 세태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다. 친권자로부터 독립된 청소년의 삶이 ‘촉법소년’의 일탈로 굴절된 상황에 관한 이야기다. 코로나 19로 인해 변한 노동환경이 앗아간 노동의 풍경에 관한 이야기다. 재난 속에서 운 좋게 깔리지 않은 이들이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서 뱉어내는 혐오를 바꿔낼 언어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이 일들이 지난하고 어려운 과제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길을 본인들이 걸어갈 것이라고, 함께 걷자고 손을 내밀었다.
“저는 다음 선거에서 오직 기본소득 정치인만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할 것입니다. 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법량)
“많은 세션에서 기본소득을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지킬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을 내걸고 정치에 나서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빨리 올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을 제1의 과제로 두는 수많은 정당이 나오고 그 당들과 기본소득당이 만나는 날을 고대합니다.” (신지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길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겠구나. 이 모험이 어디로 나를 인도할지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건 이 길이 ‘과감하고, 발칙하고, 유쾌한 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마 이런 마음을 가진 건 나만이 아닐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극찬을 아끼지 않은 사회자 류보선 교수, 가이스탠딩 교수의 말로 이 ‘의뢰받은 글을 헌사’로 바꿔버린 이야기의 끝을 맺으려 한다. 나의 친애하는 동지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저는 한국이 현실 속 기본소득을 제일 먼저 시작할 나라가 되리라 생각하는 편입니다. 대통령선거의 유력후보인 이재명 의원이 기본소득 옹호자여서도, 한국 정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용혜인 의원이 기본소득당 대표여서도, 기본소득 운동을 추동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이론적으로 날카로워지고 대중적 기반을 넓혀가서도 아닙니다. 바로 제 옆에 앉아계신 분들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기본소득 이론적 토대와 실증연구, 대중적 말하기를 모두 몸에서 통합해내는 새로운 유형의 기본소득 운동가들입니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앞세워 현실정치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이들의 모험과, 안타깝지만 멋진 실패 덕분에 기본소득 공감대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본소득 운동의 아방가르드이며, 만약 한국이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세계 첫 번째 나라가 된다면 제일 먼저 박수를 받아야 할 분들입니다.” (류보선)
“1986년, 제가 청년 때 비엔을 설립했는데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청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를 포함한 많은 분은 한국이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에는 좌절감과 불안감, 분노가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유머러스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머러스함(즐거움)을 겸비한 분노는 큰 동력이 될 겁니다.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가이 스탠딩)
당원가입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