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여름호 (특집) 22대 국회에 바란다 [보건의료] ‘공공보건의료’라는 ‘기본사회’의 주춧돌을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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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보
前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가려진 두 가지
2024년 상반기에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일이라면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제외한 사회 이슈 중에서 꼽아보라고 하면 ‘의대 증원과 관련한 의정 갈등’이 단연 1위로 꼽힐 것 같다. 의정갈등, 즉 의료계-정부 갈등이 조금도 협상과 타협의 분위기를 내주지 않은채 팽팽하게 대립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피해는 온전히 환자들의 몫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응급 환자가 진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으며, 수술 등 진료를 예약했던 중증환자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5월이 되어서야 팽팽했던 대립에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의대 증원 규모를 물고 늘어진 의료계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천명 증원을 고수하면서도 내년도 225년 의과대학 정원을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늘리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정부는 이로써 일단락 지으려 하면서 27년 만의 증원이라며 자랑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를 성과로 보기엔 아직 성급하며, 미흡하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 중에서 놓쳐서는 안될 두 가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 과정에서 향후 공공의료에 종사할 인재를 양성, 배출하는 목적의 공공의과대학 신설이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2천 명 증원은 모두 기존 40개 의과대학에 배분되고 말았다. 2천 명이라는 양적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향후 고령사회와 감염병에 대한 대비, 사회와 지역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공공의료 인력 양성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기존의 의료질서를 중심으로 한 의료개혁의 한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의대 증원 논의 과정에서 전략도 없고, 의사소통에 서툰 정부의 모습으로 인해 의료계의 반발과 불만이 커졌으며, 향후 의료개혁의 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는 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의료개혁이 의대 증원에서 그쳐서는 안되며, 필수의료 충족과 지방의료 역량 강화라는 근본적인 목적에 닿도록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정에서 놓친 두 가지가 결정적인 것들이어서 의료개혁을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자칫 의대 정원만 늘린 채 이대로 끝나 더 경쟁적이고 상업적인 의료환경이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국민의 피해가 커질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2대 국회가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에 관심을 갖고 적극 개입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성’과 ‘공공의료’에 무지했던 윤석열 정부의 2년
임기 2년을 지나는 동안 윤석열 정부가 사회정책에 대해 공공성을 무시하고 경시하는 한편, 시장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면, 2023년 1월 보건복지부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일 것이다. 당시 핵심 내용은 “복지를 돈을 쓰는 문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해 잘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이 발언의 취지를 분명히 파악하려면 두 달 전인 2022년 11월 23일 수출전략회의에서 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말 “문화체육부는 문화산업부, 환경부는 환경산업부,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산업부 이런 식으로 모든 부처가 관련되는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뛰어야 된다”고 했던 발언을 떠올리면 된다.
이런 기조하에 윤석열 정부는 공공의료의 축소와 산업중심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2022년 12월, 이전 정부가 추진하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일부 항목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축소하고 비급여로 전환했다.
그 효과는 가장 먼저 국민의 의료비 부담으로 향했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 수준은 이전 해에 비해 3%p 정도 낮아졌다. 반면, 건강보험 재정 흑자는 2023년 연말 기준 30조 원에 근접한 규모로 늘어났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높아졌는데, 건보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진 것이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 일상으로 회복했지만, 최일선에서 방역을 담당했던 공공보건의료에 대해 지원을 외면했던 윤석열 정부의 태도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공공보건의료기관들은 코로나19 대응이 장기화되면서 재정적으로나 의료인력에 있어서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그동안 진료했던 환자들도 모두 떠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런 공공의료가 회복하도록 지원하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립중앙의료원 병상 규모를 축소하고 지원 예산을 삭감했으며, 감염병 대응을 위하여 보건소에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인력을 지원하려던 계획도 중단했다. 전반적으로 정부 지원을 축소하고 후퇴시켰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방소멸의 위기와 병원이나 의료인력의 유출이 서로 악순환의 고리로 돌아가는 상황을 막기 위한 공공의료 확충 계획도 마찬가지로 후퇴했다. 이전 정부에서 결정되었던 대전과 진주의 공공의료기관 설립은 추진하지만, 광주와 울산을 비롯한 지역에 대해서는 다시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행정절차를 앞세워 무력화시켰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공공의료를 무시하고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후퇴시켰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불편한 전망이다. 의료비 부담 증가와 같은 국민 복지수준의 후퇴는 물론, 불평등의 확대와 기후위기와 사회로부터의 재난에 취약성이 확장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2대 국회가 반드시 추진해야 할 보건의료 개혁 과제
대한민국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하고, 내년에는 노인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 예상된다. 한편, 출생율은 0.8 아래로 떨어져 전세계 국가가 놀라워하며 대한민국의 소멸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의 위협은 의료자원의 취약함과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 우리 사회의 건강대응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재난’은 이제 더 이상 말로만 그치지 않을 현실적 위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신종감염병이 머지않아 또다시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상 가장 더웠던 작년보다도 올여름은 더 더울 거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 보호를 위한 대비를 요구하고 있다.
물가인상과 같은 경제불안도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물가인상보다 낮은 임금인상으로 인해 실질적 소득 감소가 나타나는 현상이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있어 생활상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곧 이들의 신체, 정신적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가 마주한 여러 위기에 따른 건강재난, 사회적 불평등 확대 등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 대응을 위한 핵심 자원은 ‘공공보건의료’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수준을 높여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한편,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공공보건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여러 위협으로부터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22대 국회에서 우선 추진해야 할 공공보건의료의 핵심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구구조 변화 속에 건강지원 서비스가 집중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우선적으로 주치의제를 도입해야 한다. 임산부 및 아동, 노인, 장애인 등에게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임산부와 아동에 대한 공공의료서비스는 저출생, 인구감소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사회적 부담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 중요하다.
둘째, 공공서비스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통합건강돌봄을 구축하도록 국회의 지원이 필요하다. 통합돌봄에는 간병을 포함한 건강돌봄서비스를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노인들이 요양원 등 시설이 아니라 거주하는 곳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지역사회 돌봄서비스 이용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의미와, 모든 연령층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지역소멸을 막자는 의미를 가진다. 이와 관련한 여러 법률을 정비하고,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의료인력과 공공병원을 포함하여 전국에 촘촘한 공공보건의료 인프라 확충을 지원해야 한다. 이 또한 인구감소와 의료자원 유출이라는 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정책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지방자치단체의 공공보건의료 시설의 설립을 의무화하며 이를 결정하고 추진하는 절차도 정비되어야 한다. 또한 이처럼 지역 공공보건의료시설에서 근무할 의료인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지방 의료면허 도입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넷째,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지도록 건강보험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흑자 재정을 활용하여 보장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한편, 실손보험의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는 3천만 명을 넘고 있다. 사실상 영유아, 노인, 저소득층 등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실손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료공급자가 환자에게 실손보험에 의지해 비급여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유도하면서 국민건강보험의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다섯째, 우리나라 재난응급의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적 정비와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재난안전기본법, 응급의료법 등을 중심으로 재난 발생시 의료체계를 정비하고, 역량 강화를 위한 계획과 예산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마치며 - ‘기본사회’를 향한 공공보건의료 강화
‘기본사회’라는 말은 국가가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수준의 생활을 권리로 보장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의 발달,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등장하는 등 사회 변화에 부합하여 ‘기본소득’이라는 부의 분배에 대한 혁신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점에서 ‘기본사회’는 국가와 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전략적 접근을 표현하는 슬로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사회’는 사회 구성원의 입장에서 볼 때는 누구나 사회적 부를 누릴 공정한 권리가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따라서 이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성 급여 이외에도 ‘공공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사회서비스’가 필수적이다. 교육, 의료, 주택과 같은 서비스가 그 주요한 대상이 된다. 이들 서비스가 적절한 질과 가격에 공급되지 않으면 인간다운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런 필수적 사회서비스는 공공서비스체계에서 관리되어야 하며, 이를 보장하는 것이 ‘기본사회’ 개념에 포함되어야 한다.
‘공공보건의료서비스’는 기본사회를 위한 가장 대표적인 사회서비스이다. 특히 인구구조의 변화와 지방소멸의 위기,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재난, 경제사회 불안으로 인한 불평등 확대 등의 문제에 직면한 우리나라에서 ‘공공보건의료’는 22대 국회에서 다루어야 할 핵심 분야이다.
시장화와 산업화에 몰두하는 윤석열 정부의 퇴행을 막고, 국민과 사회를 보호하며, ‘기본사회’로 한걸음 전진하기 위한 22대 국회의 역할을 기대한다. 그 중심에 공공보건의료의 강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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