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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봄호】낡은 체제 전환의 해법, ‘참성장전략’ _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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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작성일 : 2023.04.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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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체제 전환의 해법, ‘참성장전략’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낡은 체제의 종언: 시그널은 분명하다


필자는 IT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이제 막 마치고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대담 마무리에 한 굴지 IT기업에서 AI 개발을 담당하는 선생님께서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모르겠지만’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대담을 마치고 또 다른 전문가 교수님께서 ‘2년이 될 수도 있지 않나’라는 충격적 발언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필자가 들은 특이점은 20년 혹은 빠르면 10년이었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이 로봇을 만나면서 근본적으로 산업과 노동시장 그리고 삶을 변화시킬 시간이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전환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 사회경제 그리고 제도의 모습은 어떠한가?  

경제에서 보이는 핵심적인 경향성은 ‘제로성장(zero growth)’이다. 소위 ‘제로성장’ 혹은 저성장과 같이 성장률이 정체되거나 0에 가깝다는 것은 고용이나 투자가 줄고, 빈곤이나 불평등 증가, 이로 인한 사회정치적 혼란을 늘어난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제로성장은 더 이상 가설적 상황이 아닌 점차 현실로 대부분의 선진국에게 다가오고 있다. 실제 선진국에서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증가율은 1970년대부터 이래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5%를 넘어갔던 성장률은 1~2%로 줄었고, 2007-08년 경제위기와 최근 코로나 위기를 맞으면서 제로성장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 국가들은 단 한 번도 전통적인 성장기조(GDPism)를 변화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 저성장을 넘어 제로 성장기조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며, 기후변화나 사회적 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탈성장적 관점을 가진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림1. 주요 선진국가 경제성장률 추이 (1970년대-2020년까지, 자료:OECD, 2023) 


이러한 정체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요인은 기술진보이다. 주류경제학 설명에 따르면 기술혁신은 생산성의 혁신을 불러와 1인당 생산량을 높이고 정체상태 경제를 넘어 ‘성장’하는 경제를 이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현재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기술혁신이 일어나지 않아서일까? 전화를 들고 다니며 세계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손을 놓고 운전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며, 가상인간이 모델을 대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한 기술혁신이 지난 시기 동안 가파르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생산성 증가는 더뎌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성의 역설(productivity paradox)로 불리는 이 현상은 현재 OECD 대부분의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Andrews et al., 2016)

생산성의 역설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Brynjolfsson and McAfee, 2014)와 같이 기술혁신에 긍정적인 입장은 지금까지의 기술혁신이 개인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생산성에도 기여하고 있지만 아직 ‘성장’으로 표현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한다. 어떠한 특정한 티핑포인트에 이르면 기술발전이 성장과 생산성의 향상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에 가까운 생성형 인공지능은 새로운 변화가 될 수 있다. 

반면, 고든(Gordon, 2012)과 같은 학자는 현재의 기술발전이 지금의 생산성 흐름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불평등, 인구구조 변화, 부채증가, 교육 등의 문제로 인해서 당분간 더 이상 생산성의 발전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추가적으로 다른 학자들은 소수만의 기술발전과 소수를 따라가지 못하는 다수 기업들의 생산성 지체를 원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Soete, 2018). 한 국가가 소수의 디지털 기업과 다수의 저생산성·저숙련 산업 영역으로 구성된다면 국가차원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든이 말한 불평등과 같은 생산성의 장애 요소들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을까? 이미 탈산업화와 디지털화가 결합된 사회가 중산층 일자리를 줄이고, 저숙련 및 저임금 일자리 및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서 증명된 바 있다(Goos et al, 2004). 이러한 경향은 인공지능의 본격적 발전과 함께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을 만들고 통제할 수 있는 이들과 인공지능에 의해서 작업을 지시받는 다수로 구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존의 반복적 업무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 창의적 일을 하는 업무 및 직업을 대체할 가능성마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대처하는 사회보험제도와 공공부조제도는 제조업 및 남성중심고용을 했던 산업화의 산물이다. 지난 20년을 통해 현재의 복지국가 제도들이 불평등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위험을 일부 대처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전환에 대한 대안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인구구조의 변화 역시 이미 우리나라의 경우 변화시키기 어려운 미래의 확실한 모습이 되고 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거부는 현재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이기도 하며,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내린 합리적 결정에 가깝다. 디지털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지만, 지위(position)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나 이를 위한 사교육비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역량을 강화시키고, 자신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논의하며, 창의성을 발전시키는 ‘교과서적 교육’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에서는 의대를 향한 줄서기가 한창이고 다른 편에서는 여전한 장시간 근로와 산업재해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청년들의 ‘합리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기술적 특이점과 함께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온 미래는 지구의 생태변화이다. 기후재앙이 더욱 잦아질 수 있는 지구기온의 ‘1.5도 상승(산업화 이전 시기에 비해)’을 2040년 정도로 보던 예측에서 이제 5년 이내일 수도 있다는 추계까지 나온 상황이다.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미도우(Meadow, 1972)의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 올슨과 란드버그(Olson and Landsberg, 1973)의 ‘무성장 사회(The No-Growth Society)’, 렌셔(Renshaw, 1976)의 ‘진보의 종언(The End of Progress)’ 등은 자본주의의 성장방식 및 생태위기에 대한 경고를 강하게 제기한 바 있다. 현재의 체제는 예전부터 경고되었던 이 위기를 전혀 대처하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기후위기 관점에서 제로성장과 이로 인한 탄소절감은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 혹은 미래가 되고 있다. 이들은 지구와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면서 산업화 이래로 채택된 ‘끊임없는 성장’ 관점에 문제제기를 하고, ‘탄소중립’을 핵심으로 하는 성장의 새로운 관점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참성장전략: 전환의 키워드


기존의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적 성장 방식은 한편으로 목표로 하는 성장을 도출하는데 실패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위기 및 생태 위기를 폭증시키면서 그 방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압력 하에 놓여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새로운 산업 및 생활의 지평을 열 가능성은 있지만, 이러한 기술변화가 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기술변화가 매순간 경로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법과 제도는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한 규제 정도를 논의할 정도로 경로의존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가 더 나은 삶을 누릴 체제전환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로의 체제전환은 포기할 수도, 포기할 필요도 없는 주제이다. 제로성장 사회경제를 서서히 소멸되어가는 과정이 아닌 현재와 미래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동적 사회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즉 우리 사회경제 및 복지국가의 과제를 찾고 대안을 함께 모색하면 된다. 돌링(Dorling, 2020)이 지적한 바와 같이 대가속(Great Acceleration)의 시대가 끝이 나고 전면적인 ‘슬로다운(Slowdown)’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슬로다운의 시대가 오히려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시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두 시나리오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회경제 그리고 정치의 대응이다. 그것이 참성장(genuine progress) 전략이기도 하다. 



그림2. 성장전략의 네 가지 패러다임 (최영준, 2021) 


참성장전략의 시작은 현재와 미래 그리고 가격과 가치 간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지금까지 성장의 모습은 현재 가격을 최대화시키는 ‘근시적 패러다임’에 몰두해있었다. 그 과정 중에 신뢰나 연대처럼 가치를 창출하지만 가격을 생산하지 않는 요소들을 증진시키는 활동 그리고 돌봄과 같은 활동은 경시되고 사회적으로 보상받지 못하였다. 또한, 미래세대가 사용할 환경과 자원에 대한 고려 없이 현재 가격 창출을 위해 미래 자연이 착취되었다. 아동이나 청년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지만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패러다임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추진되는 것이 참성장이라면, 현재까지의 성장은 근시적 패러다임만을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근시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경로의존이 아닌 경로탈피를 의미하고, 지금까지 의존하고 있었던 많은 제도와 정책들과의 결별이나 상당한 개혁을 의미한다. 참성장은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갈색성장(Brown Growth)과의 결별을 의미하고, 20세기에 쌓아왔던 ‘갈색’의 유산들을 해체하고 탄소중립을 촉진하는 기술에 대한 적극적 촉진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탄소세와 같은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정책들이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 

다가오는 시대에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자 경제를 움직이는 압력이 될 것이다. 디지털화라는 높은 파도를 거슬러 항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파도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활용한다는 의미는 기술이 모두를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혁신과 기술의 위험을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 줄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로 인한 이익들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사유화’로 이어지지 않고, 공유되고 사회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과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 하지만, 디지털화가 직무나 직업을 소멸시킬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더 저항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이 지금까지는 규제였다. 여전히 규제의 역할은 중요할 수 있지만, 규제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개인들이 유연하게 디지털화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할 방법은 혁신적인 사회보호(social protection)와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이다. 

지금까지의 사회보장체제를 넘어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과 기본서비스, 그리고 다양하고 풍부한 교육 기회들이 필요하다. 북유럽이 지난 20년 동안 가장 혁신적인 경제를 건설하고, 다양한 기술발전에 앞설 수 있었던 원인은 탄탄한 사회보호와 사회투자에 그 답이 있었다. 우리 역시 디지털화와 모든 개인들이 상생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협약이 필요하다. 디지털화가 가져다 줄 불평등과 같은 부정적 효과나 불확실성을 국가가 기본 생활보장으로 줄여주고, 대신 개인은 디지털을 활용하여 삶을 윤택하고 하고, 동시에 다양한 창업이나 도전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을 넘어 돌봄이나 공익적 활동 등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이들이 소득지원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는 2-3년 전만 해도 기술적 특이점이 오면 그 때 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을 내곤 했었다. 하지만, 기술적 특이점은 이제 눈앞에 왔다.

이를 위한 보편적이고 누진적 증세는 피할 수 없다. 보편적이고 누진적 증세의 방안은 더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확실히 설정해야 하는 것은 조세제도의 목표이다. 조세가 이미 증가하고 있고, 향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우려되는 불평등을 감축시켜야 한다는 점, 증세가 가치를 창출하는 바람직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세는 바람직성을 갖는다. 반면에 고용을 할수록 더 많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보험료는 바람직하지 않다. 고용보다 이윤을 중심으로 사회보험료가 책정된다면 고용이 중요한 시기에 더욱 바람직성을 가질 것이다. 또 다른 고려점은 조세제도의 개편과 증세가 사회통합과 연대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조세를 내는 자와 받는 자를 갈라놓는 방식은 사회의 연대를 촉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세제도가 단순히 기능적 역할을 넘어 사회적 역할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강한 체제의 경로의존은 변화를 어렵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참성장이 필요한 이유이다. 




[참고문헌]

Andrews, D., Criscuolo, C., & Gal, P. N. (2016). The best versus the rest: the global productivity slowdown, divergence across firms and the role of public policy.

Brynjolfsson, E., & McAfee, A. (2014). The second machine age: Work, progress, and prosperity in a time of brilliant technologies. WW Norton & Company.

Dorling, D. (2020). Slowdown: The end of the great acceleration—and why it's good for the planet, the economy, and our lives. Yale University Press.

Gordon, R. J. (2012). Is US economic growth over? Faltering innovation confronts the six headwinds (No. w18315).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최영준 (2021) 참성장전략: 공멸이 아닌 공존의 시대로. LAB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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