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봄호】 [시론] 대멸종과 대전환의 갈림길에서_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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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멸종과 대전환의 갈림길에서
오준호(기본소득당 공동대표)
일찍이 마하트마 간디는 “지구의 부는 모두의 필요를 채우기엔 충분하지만, 소수의 탐욕을 채우기엔 결코 충분하지 않다”라고 했다. 간디의 이 말이, 3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기자회견’에 참가하는 동안 머리에 맴돌았다.
이날 기자회견은 그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전세사기 피해자인 A씨의 추모제를 겸했다. A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며 백방으로 뛰었으나, 끝내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 버티기 힘들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A씨와 같이 사기 피해를 입은 이들은 3천여 세대, 인원으로는 5천 명에 이른다.
이 사건은 ‘건축왕’이라 불리는 사기꾼이 바지임대인,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인, 감정평가사 등과 짜고 ‘아무 문제 없는 건물’이라며 임차인을 속여 전세금을 받아 유용하고 잠적한 사건이다. 사기꾼들은 시세가 불분명한 다세대 주택 수백 채를 매입해 집값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속여 받았고, 피해자들은 ‘깡통전세’에 사는지도 모르다가 집이 경매에 넘어가기 직전에야 사태를 인지했다. 사기꾼에게 대출해준 은행도, 임대계약을 보증해준 보증기관도 책임을 외면했고 오로지 임차인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뒤집어썼다.
이날 피해자들은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사회적 재난’이란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전쟁 중이거나 대지진이 강타한 나라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5천 명이 집을 잃게 생겼으면, 사회적 재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개인의 부주의를 탓하거나, 몇몇 범죄자만 잡아넣으면 되는 사건이 아니다. 명백한 정책 실패요, 소수의 탐욕적 투기를 배양한 사회구조의 문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재난 피해자들의 대책 요구에 뒷짐만 지고 있다. 전 여당으로서 정책 실패에 책임이 있는 거대야당도 반성의 기미가 없다.
한편, 이 글을 쓰기 직전인 3월 20일엔 온실가스가 인류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을 바짝 앞당기고 있다는 권위 있는 경고를 접했다. 195개국이 참가한 IPCC(기후변화에 대한 국가 간 협의체)는 제6차 평가 종합보고서에서 ’무얼 해도 기후재앙을 막을 수 없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이 고작 10년이라고 밝혔다.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위기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최종 시한이 10년이란 것이다.
2014년에 나온 5차 보고서는 19세기 중반 대비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에 이르는 시점이 약 2040년대 전후라고 했는데, 6차 보고서는 2030년대 전후로 그 시점을 앞당겼다.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지금껏 실패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6차 보고서는 세계 소득 상위 10%가 온난화에 약 40%의 책임이 있으며 하위 50%는 겨우 15%의 책임만 있음을 분명히 했다. 기후재난의 배경에도 소수의 탐욕과 무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후재난 피해가 저소득 시민, 여성, 어린이, 소수자 그리고 재난 대비 인프라가 부족한 저개발 국가에 집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입만 열면 ‘과학’을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는 내로라할 과학자들이 승인한 6차 보고서가 나온 직후 과학을 부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발표를 했다.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한국이 시행해야 하는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의 이행 계획을 발표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정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 목표는 유지했지만, 현 정부 임기인 2027년까지는 전체 목표의 25%만 감축하겠다고 한 것이다. 나머지 75%는 2028년부터 2030년까지 감축하라며 다음 정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10년 안에 마지막 생존 기회라 여겨 움직이라고 과학자들이 호소하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그 말을 들을 계획도 노력할 의지도 전혀 없어 보인다. 과학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고밖엔 이해할 길이 없다.
기후재난을 떠올리기 위해 SF 디스토피아 영화의 장면을 상상해야 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지난해 서울 도심에 하늘에 구멍 난 듯 쏟아진 집중 폭우, 그리고 지금 전라남도 일대에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혹독한 가뭄은 모두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초인 이상기후현상이다. 기후재난은 자기 집에 갇혀 익사한 반지하주택 저소득 장애인 가족에게 이미 벌어졌고, 농사는 고사하고 먹고 씻을 물도 구하기 힘든 농촌 노인에게 오늘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기성 체제의 가장 큰 기득권층인 주류 정당과 주류 언론에게 관심 대상이 아닐 뿐이다.
낡은 과거로 퇴행할까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까
확실히 이 모든 일이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어느 정도 합의된 방향마저 이 정부 아래서 빠르게 뒤집어지거나 퇴행한 건 분명하다. 윤석열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도, 노동시간 단축도, 최저임금 인상도, 언론의 자유도, 민주주의 기본 가치의 존중도 애초 그런 것이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부정하거나 마치 불법건축물 철거하듯 없애려 든다.
사람들이 놀라는 건 이 점이다. 어떻게 이처럼 간단히, 우리 사회 모든 면에서, 이토록 빠르게 퇴행이 일어날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어제의 진보를 하루아침에 지우고 원점으로 돌아가 문제에 다시 부딪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기본이 이렇게 허약했던가 하고 많은 이들이 무력감에 빠졌다.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회가 진보한다는 막연한 믿음만 있었을 뿐 그 진보를 불가역적인 구조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건 단지 어떤 입법이 부족했다는 말이 아니다. 다른 사회로의 전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과제에 실패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즉 지금 이 퇴행은 우리가 이 사회를 이상(理想)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과업을 하다 말고 멈췄기에 발생한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경제로든 사회 전반이든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자타가 인정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한국의 ‘성공 공식’들은 어느 시점부터 한국이 다음 과업으로 넘어가는 데 방해물로 바뀌었다. 학자들은 ‘성공의 덫’에 한국이 갇혔다고 표현한다. 지금까지 성공을 보장해주던 방식, 제도, 관행이 어느 순간 새로운 진로의 모색을 막고 공동체의 긴장을 높이고 혁신의 족쇄가 되어온 것은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단지, 어차피 이럴 거면 ‘잘나가던 과거 방식’으로 되돌아가자고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말하는 권력은 아닌가?
그 과거의 방식이란, 강력한 권위적 지도자가 결정권을 쥐고, 그 결정을 비판하거나 훼방하는 자들은 검찰과 공안기관 등 공권력(실은 그들만의 카르텔인)으로 제압하고, 생태환경이든 정치다양성이든 균형발전이든 ‘좋아, 빠르게 가’에 부담을 주는 가치는 철저히 무시한 채 대기업과 토건자본을 주도로 단기적 성장이라는 성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선 공동체를 내 편과 반대편으로 쪼개고 소수자와 반대파를 향해 증오를 부추기는 것쯤은 상관없다. 그렇게라도 ‘다시 잘 나가게 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지지가 있는 한.
그런데 윤 정부가 추진하는 그 노골적이고 낡은 방식은 절대로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이미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급했듯이 대멸종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좌고우면할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챗지피티로 상징되는 인공지능 기술의 급진전은 특이점을 빠르게 앞당겨 이제 창의적 영역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노동 및 일자리 구조에 대충격을 줄 것이다. 국제 정치적 상황은 한국의 선진국 도약에 유리했던 자유주의 세계화 시대가 끝났고 신냉전 블록화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데, 실용적인 외교 정책과 앞서가는 산업 전략이 없는 한 한국은 신냉전 하에서 강대국의 자율성 없는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그러면 윤석열 정부가 벌일 실정(失政)을 반대파들은 그저 비난하면 되는 걸까? 아니다. 현 정부에 실망하면서도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없고, 전 정부도 마찬가지였을 뿐이라고 여기는 많은 국민은, 정부 실정을 그저 비난하기만 바쁜 반대파를 보며 정치에 대한 냉소만 남게 된다. 정치 냉소가 이끼처럼 퍼진 그늘진 공간에는 극우 포퓰리즘이 준동하며 세를 넓혀갈 것이다.
전환의 기획, 그리고 담대한 제안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멈추고 맴도는 곳에서 과감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탈주하기 위한 전환의 기획은, 실제 실행 계획으로도 그리고 정치적으로 방향을 잃고 흩어진 정동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온갖 실정은 분노의 정동을 일으키지만, 공동체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로 가기 위해서는 분노를 넘어 무엇을 건설할지 또 어떤 미래로 가야 하는지 가리킬 ‘창공의 별’이 있어야 한다.
대전환의 ‘인커밍’을 꿈꾸며
이번 ‘인커밍’은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전환의 방향 탐색을 주제로 삼았다. 다가오는 경제전환, 곧 ‘경제전환 인커밍’이 메인 테마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전환은 사회적 대전환이다. 경제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전 영역의 담대한 전환을 꿈꾼다. 다만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초점을 한국 경제에 맞췄다. 어떻게 하면 정의롭고,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하면서,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로 경로를 바꿀 수 있을까?
이 주제를 위해 네 사람의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횡재세 도입 등 증세, 적극적 재정정책, 대규모 공공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 정부의 감세와 긴축 기조를 비판한다. 윤형중 LAB2050 대표는 당장의 퇴행을 막고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안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 공론장을 만들고 작은 혁신의 사례들을 창출하고 축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혁신적이고 공정한 사회투자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촉구한다. 이를 ‘참성장전략’이라 부르는데, 성장이 생태환경이나 균형발전과 탈구되어 작동해온 과거 성장전략에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은 기후변화와 불평등 그리고 글로벌 가치사슬 변동에서 오는 위기를 단순히 재분배정책 강화로만 해결하긴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을 동시에 창조해야 위기를 넘어 전환을 이뤄낼 수 있고, 이에 꼭 필요한 대안은 ‘공유지분형 산업정책’이라고 강조한다.
필자들과 온라인 대담을 통해 나눈 이야기도 정리해 실었다. 미처 원고에 다 담지 못한 필자들의 시선과 견해를 대담에서 풍성하게 담을 수 있었다. 대담에서 필자들은 과거 한국 경제의 성공방식이 현재 어떤 위험요소로 변질했는가 밝히고, 한국 사회 전환 방향과 그 핵심 과제를 각자의 이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전환이 시급하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는 여러 쟁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플 인커밍’ 코너를 이번 호도 이어간다. 이 코너에선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 혹은 불편해도 알아야 할 진실을 전해주는 인물과의 인터뷰를 싣는다. 이번 호 메인 테마인 ‘전환’과 관련짓자면, 장시정 ‘기후정의행동 지구인’ 대표의 인터뷰는 사회 전환을 위해 살아온 이야기다. 진보정당에 참여해 정치의 전환을 위해 활동한 그는 지금은 생태적 에너지 전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조미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인터뷰는,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설명이 필요 없는 울림을 주는 동시에, 시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왜 중요한지 생생히 증언한다. 첫 번째 인터뷰를 맡은 김한별 당 정책연구원, 두 번째 인터뷰를 맡은 용혜인 의원 청년특보팀(노서영, 박세은, 양지혜)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슈 인커밍’에서는 주요 이슈에 관한 기본소득당의 입장과 실천을 드러낸다. 역시 전환이라는 단어로 연결할 수 있다. 사회 전환은 정치개혁에서 시작될 수 있어서 현 선거제개혁 논의가 중요한데, 신지혜 당 대변인이 선거제개혁의 논점과 당의 입장을 설명하는 글을 썼다. 다만 그는 글을 쓴 시점에 선거제개혁이 정치 다양성에 역행하고 거대양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악될 가능성이 크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심하게 퇴행하는 가치인 성평등과 관련하여, 윤김진서 당 기획국장이 특히 스토킹 처벌법과 피해자보호법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썼다. 글은 개인의 체험과 정책의 공백을 잘 연결해 설명하고 있다.
용혜인 의원실에서 노동정책을 맡아온 최승현 노무사는 자신이 걸어온 노동기본권 운동을 돌아보며 노동의제와 기본소득이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 정부의 ‘노조 악마화’가 심각해진 현실에서 당의 노동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김영길 용혜인 의원실 수석보좌관은 기본소득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참여한 과정과, 전혀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 국가기관을 상대로 참사 진상을 밝히고자 어떤 계획으로 임했는지 설명한다. 이태원 유가족 인터뷰와 함께 읽으면 우리 당이 유가족의 신뢰를 얻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끝으로 문지영 전남기본소득당 위원장은 기본소득 바람이 중앙정치에 잠시 잦아드는 사이에 전남에서 햇빛배당, 교육기본소득 등 지역에 밀착한 기본소득 정책의 가능성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소수의 탐욕은 사회의 부를 독차지하여 다수를 가난하게 만들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부를 창조하는 길도 막아 공동체가 함께 번영할 기회마저 없앤다. 따라서 사회경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분배정의는 물론이거니와 성장의 성격을 바꾸기 위해,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생태적 경제를 위해, 민주주의의 불가역적 발전을 위해 그러하다. 또한 그 대전환의 열쇠요 마중물은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당은 오늘도 대전환의 ‘인커밍’을 꿈꾸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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