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봄호】[인터뷰] 10.29 이태원 참사 유족 조미은씨(희생자 이지한씨 어머니) “진통제로 버텼어요, 이 죽음을 인정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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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29 이태원 참사 유족 조미은씨(희생자 이지한씨 어머니)
“진통제로 버텼어요, 이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서”
인터뷰어 용혜인 의원 청년특보팀(노서영, 박세은, 양지혜)
한국여성대회가 열린 3월 4일, 서울광장에서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와 처음 대화를 나눴다. 서울광장 한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옆 유가족협의회 부스에서다. 먼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서명 용지에 이름을 적고 나서 조미은씨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청했다.
조미은씨는 이태원 참사가 나고 한 달 조금 안 된 11월 22일 KBS뉴스에 출연해 유족의 심경을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족으로 공중파 뉴스 출연은 최초였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조미은씨가 바란 철두철미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못했고 유족을 향한 혐오 표현도 멈춰지지 않았다. 2월 4일 참사 100일 추모대회를 마친 유족과 참가자들은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녹사평역에서 광화문광장으로 옮기려다 경찰에 저지당했다. 방향을 튼 분향소는 서울광장에 자리 잡았다. 그날부터 유족들은 시민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분향소를 지켰다. 서울시와 경찰은 분향소를 철거하라며 위협하고 있다.
인터뷰는 조미은씨를 만나고 얼마 후 3월 17일에 국회 용혜인 의원실에서 진행했다. 인터뷰어는 용혜인 의원 청년특보팀의 노서영 기본소득당 기획조정실 부실장, 양지혜 기획국장, 박세은 청년특별보좌역이 맡았다. 박세은 청년특보는 2월 용혜인 의원실이 개최한 ‘링크로스아카데미’에서 선발됐다(링크로스아카데미는 청년 캠페인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이다).
모두 살릴 수 있었다
노서영 : 유가족들은 가족의 시신이 있는 곳에 왜 들어가지 못하게 했는지, 희생자를 이송할 때 왜 함께 가지 못하게 했는지를 가장 알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참사 후 가족을 힘들게 찾아야 했던 상황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태원 참사 현장에 갔던 부모님들 말씀에 따르면 다목적 체육관에 아이들에게 노란 타월 같은 걸 덮어놓고는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고 해요. 심지어 어떤 분은 자기 아이가 보여서 ‘저 아이가 내 아이’라고 했는데도 경찰이 (희생자의) 신분증과 휴대폰을 주면서 일단 가지고 가서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대요. 시키는 대로 해야 빨리 소식을 들을 것 같아서 따랐는데, 새벽 2시에 돌려보내고 오후 2시가 돼서야 아이가 평택 어디, 용인 어디 병원에 있다고 전해준 거죠. 그 어머님은 ‘내가 왜 그때 아이 휴대폰과 신분증을 받았을까’ 하는 거예요. 휴대폰과 신분증을 줬다는 건 신원이 확인됐다는 뜻인데 바로 부모에게 인계해서 얼른 병원으로 옮겼다면 살릴 수도 있었던 거죠.
저는 TV 보도를 접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대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경찰관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지한이가 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한 치과의사분이 인스타그램으로 연락한 바로는 그날 밤 11시에 지한이가 도로에 누워 있었는데, 심각해 보이지 않아서 그분은 15분 있다가 자리를 떠나셨대요. 그런데 소방 일지를 보면 11시53분에 지한이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출발했다고 나오거든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다’, ‘경찰을 더 많이 배치한다고 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잖아요. 그렇지만 희생자의 사망 시간이 다 달라요. 지한이도 조금만 빨리 응급조치가 취해졌다면...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많이 있어서 즉각 대응했다면 159명 가운데 몇 명이라도 살릴 수 있었어요. 아니, 최초 신고 6시34분에 초동 대처만 잘했다면 한 명도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연락처가 없는데 대통령 화환은 어떻게
박세은 :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은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기에 그 유가족들도 접점이 없어서 모이기 어려웠다고 알아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어떻게 함께 뭉쳐서 싸우게 되셨나요? 무엇이 서로에게 힘이 되었는지도 알려주세요.
저와 지한이 아빠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른 희생자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어요. 지역구 의원을 찾아가 번호 하나를 받아 그분에게 연락하고, 그분이 아는 다른 분에게 연락하고 해서, 현재 희생자 107명의 가족 가운데 210명 정도가 단톡방에 모여 있어요. 정보가 없어서 미친 듯 발로 뛰어 서로 만났어요. 그런데 행안부는 나머지 희생자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아요.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으로 연락이라도 해달라고 했지만 그 어떤 가족도 연락 못 받았대요. 의지가 없는 거죠. 그런데 장례식장에 대통령 근조화환은 다 받았거든요. 행안부는 연락처가 없다는데, 그 연락처는 누가 갖고 있는 거예요? 장례식장을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화환을 보냈나요?
가족들 트라우마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요새 뉴스만 보는데 TV 채널을 돌리다가 웃긴 멘트를 보고 살짝 웃은 적이 있어요. 그 직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내가 지금 왜 웃고 있지? 제정신인가?’ 5개월이 다 됐는데 저 영정사진이 진실이라는 걸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요. 또 부모님들이 대체로 잘 못 드시거든요. 그러다가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문득 ‘이 음식이 이런 맛이구나’ 느낄 때에도 굉장히 제 자신이 싫어져요. 부모로서 할 일을 다 못하고 있다고 느끼죠. 근데 어떤 이는 ‘저 사람들 밥도 먹네. 웃기도 하네’ 이렇게 보죠. 제가 참사 후에 매주 지한이 밥상을 집에 차렸는데 마트를 못 가고 인터넷에서 재료를 주문했거든요. 지한이가 평소 먹고 싶어 했던 거를 걔가 가고 나서 시킨 거예요. 근데 배송 온 거를 아파트 주민이 보면 ‘저 사람들 애가 갔는데 잘 먹나 보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껴요.
그런데 유가족들이 모이는 그 초라한 천막에서는요. 웃어도 되고 울어도 되고, 아무 얘기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해도 되고, 뭐가 맛이 괜찮더라, 우리 아들이 먹던 건데 가고 나서 대신 먹어보니까 걔가 이걸 먹은 이유가 있더라, 이렇게 얘기하면서 치유가 되더라고요. 잠시나마 기억을 잊고 눈물을 잊고. 단 몇 시간의 치유인 거예요.
진통제 스물네 알을 먹으며 끌어낸 용기
박세은 : 유가족으로서 가장 먼저 언론에 출연하기를 결심하셨어요. 부당한 비난의 화살도 많이 쏟아졌는데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KBS 스튜디오에 나갔는지, 까마득한 옛날얘기 같아요. 악성 댓글이 천 개 이상 달렸어요. 나라를 구했냐, 시체 팔아서 제2의 세월호 사건처럼 돈 뜯어 먹으려고 하냐 등등. 가장 참을 수 없던 말이 ‘텔런트 시체팔이 엄마’였어요.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누가 저한테 그 말을 퍼부었을 때, 구급차를 타고 집에 가서 8일 동안 못 일어났어요. 하루에 진통제 세 알씩, 스물네 알의 진통제를 먹고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요. 약을 먹고 몇 시간 지나면 다시 몸이 아프기를 8일을 반복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건, 제 아이에게 찾아온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고, 모든 국민에게 이 부당함을 알려야겠다는 일념 하나였어요.
변명만 가득했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노서영 : 그렇게 해서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국정조사에서 유가족의 참여가 제대로 보장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거의 모든 자리에 직접 참관하셨는데 국정조사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국정조사에서 아쉬운 건 전문가 공청회와 유가족 공청회를 먼저 한 다음 청문회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에요. 여당 위원 일곱 명이 한 가지 문제만(의사 출신인 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닥터카’를 타고 현장에 간 일) 반복해 제기하면서 시간을 끈 것에 대해 항의했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하나같이 몰랐다, 듣지 못했다, 보고를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구치소에 있어서 저희 직원들이 너무 걱정된다’던 박희영 용산구청장, 골든타임이 지났다고 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보고를 못 받았다며 변명만 하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윤희근 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서장. 이런 사람들을 보고 눈앞이 캄캄했어요.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채택하는 날에 변호사가 ‘결과보고서 채택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거예요. 전날 전주혜 의원도 눈물을 흘렸고 조은희 의원, 박성민 의원도 죄송한 듯 얘기했기에 그래도 잘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부랴부랴 국회에 도착했더니 여당 위원들이 다 퇴장한 가운데 조사 결과보고서가 채택이 됐어요. 그렇게 어렵게 국정조사가 마무리됐는데, 우리들이 정말 알고 싶은 건 그날의 진실인데 위정자들 변명만 듣는 시간이 되어 굉장히 아쉬워요. 그래도 국정조사마저 없었다면 더 묻혔을 상황을 이제 국민들도 보셨겠지 하고 생각해요.
박세은 : 국조특위 위원으로서 용혜인 의원과 기본소득당의 활동은 어떻게 보셨나요?
매일 전쟁 같은 와중에 한줄기 빛이고 밧줄 같은 존재였어요. 국정조사 시작 전에 유가족들이 각 당을 방문했어요. (국정조사 계획이 인쇄된) A4 용지를 내민 당은 기본소득당 말고 없었어요. 칼라 복사된 그 A4 용지가 아직 생생해요. 이상민 장관의 잘못이 무엇인지 등을 비롯한 국정조사 계획 자료를 유가족 앞에 내셨는데, 가족들을 대하는 자세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한 명의 초선 의원이 이끄는 당인데도 이런 성의가 있다는 것에 감동받았어요. 이 분은 다르구나, 듣던 대로 달랐어, 이렇게 생각했어요. 또 국정조사 말미에 용혜인 의원이 이상민 장관의 법적 책임을 따져서 그때까지 책임을 회피한 부분을 인정하게 만든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걸 보며 함께 박수 쳤던 기억이 나요.
양지혜 : 유가족들이 신뢰해주시고 같이 고민해주셔서 저희도 많이 성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신자유연대가 ‘빵칼’이라면 서울시는 ‘식칼’
노서영 : 다음 질문을 드릴게요. 최근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서울광장 분향소의 종료시점을 4월 초로 정해 언론을 통해 제안했는데요. 녹사평역 지하 4층보다는 진전된 내용의 안이라고 하지만, 그 안을 내밀며 계속 분향소 철거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기억은 다음 참사를 막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억해서 잊지 않아야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가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서 광화문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원천 봉쇄되는 바람에 틀어서 시청 앞으로 왔단 말이에요. 시청 앞 분향소에 와보셨는지 모르지만 저희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일은 159명의 아름다운 사진을 매일같이 닦는 것밖에 없잖아요. 분향소 천정에는 바람에 날아갈까 비가 샐까 케이블타이로 꽝꽝 묶어놨어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 볼품없는 분향소를 철거하겠다고 수차례 계고장을 보냈죠. 참사 다음 날 눈물 흘리며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유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요.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닦는 걸 봤는데요. 그걸 악어의 눈물이라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녹사평역에 있을 땐 ‘신자유연대’한테 공격을 많이 당했어요. 근데 신자유연대가 빵칼 같은 존재라면 시청 앞에 온 후로 서울시의 협박은 식칼 같아요. 신자유연대는 공권력도 없고 철거하러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저희 유가족들의 마음을 해치는 공격을 했죠. 그런데 시청에 와보니 계고장이 날아오고 경찰 수백 명이 둘러싸고 가벽이 설치되고 몸싸움이 일어나요. 서울시의 협박은 공권력을 동반하죠. 우리가 불법으로 천막을 쳤다며 법 조항을 들어가며 엄포를 놓아요. 제가 혐오발언을 듣고 8일간 못 일어나다가 어쨌든 다시 일어났는데, 서울시가 하는 언론플레이는 변호사를 대동해 맞대응을 해야 하는, 식칼 같은 위협인 거예요.
혹자는 최근 서울시가 제안한 코오롱빌딩 1층이 전보다 나은 제안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 뒤에는 4월 1일부터 5일까지라는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칼이 숨어 있잖아요. 저희가 시청 앞에 온 지 한 달 조금 넘었어요. 더 많은 시민과 만나서 이태원 참사를 더 알려야죠.
노서영 : 분향소 지킴이 프로그램도 운영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주시겠어요?
글을 써주세요. 바른 말을 해주세요. 매일 저녁 7시, 토요일에는 6시 반에 하는 추모문화제에 오셔서, 우리 앞에서 쓰신 글을 읽어 주세요. 잘못한 자들에게 따끔하게 글로 질타해주세요. 시를 썼다면 시를, 노래가 있다면 노래를 불러주세요. 그것이 저희들을 도와주시는 가장 큰 힘입니다. 또 기자 여러분께도 부탁하고 싶어요. 분향소 앞에 정말 많은 기자들이 있는데 보도가 안 나와요. 기자라는 직업을 왜 선택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대통령에게도 당당하게 잘못된 점을 말하는 기자들이 많기를, 힘없는 유가족들을 위해 바른 말을 하는 기자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평범한 엄마가 꿈꾸는 추모 콘서트
노서영 : 마지막 질문입니다. 용혜인 의원실에서 4월 중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셜투어 2기’ 활동을 하며 대학별 간담회를 개최하고, 참사 200일 추모 캠페인을 기획하려고 해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연대하려는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 55세인데 10년이 가면 65세가 될 거고 일본 아카시시(市) 참사처럼 이 일이 오래 간다면 75세가 될 거예요.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빠지고 진상규명은 갈수록 어려워질 거예요. 그럴 때 오래 이 일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해봤어요. 우리 일을, 이 울분을 대신해서 기억해주고 행동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청년들이겠구나. 남은 내 아이가 동생의 일을 기억하고 오빠의 일을 기억해야 하는데, 부모들 숫자에 비해 아이들 숫자가 훨씬 적거든요. 그럼 그들이 10년 20년 30년 후에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젊은이들과의 연계가 필요하죠. 서로 참사를 잊지 않도록 꾸준히 만나야 이 참사가 오래 기억될 수 있어요. 기본소득당에서 청년들과 하는 프로젝트는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가장 긴 추모의 방법 같아요.
언젠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전국의 젊은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어떨까 그려보기도 했어요. 잠실 체육관을 빌려서 추모 콘서트도 하고 발언도 하고요. 대통령과 사퇴하지 않고 있는 책임자들에게 보란 듯이, 10년 안에, 5년 안에 젊은이들이 한 번 모였으면 좋겠어요. 나도 같이, 유가족들도 같이, 젊은이들과 함께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추모를) 공동의 과제로 생각하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아요.
양지혜 : 그 순간에 저도 한 명이 되어 서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내 아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거예요. 밥 먹으러 갔다가 못 돌아왔으니까. 9년 동안 꿈을 위해 먹고 싶은 걸 제대로 먹지 못했거든요. 먹다 남은 다이어트 식품이 냉동실에 꽉 차 있는데 그걸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고, 버릴 수도 없고, 그냥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 평범한 엄마입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 죄송해요.
박세은 : 아니에요. 직접적인 피해자인데도 세세한 부분까지 혼자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으셔서 저도 속상하고 울컥했어요.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려요.
노서영 : 더 이상 유가족만 남겨두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고 피해자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저희도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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