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봄호】기후위기와 불평등, 대안은 공유지분형 산업정책_금민(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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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불평등, 대안은 공유지분형 산업정책
금민(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한국 경제의 현황은 매우 어둡다. 대외여건의 악화로 수출은 위축되었고 제조업 부진은 설비투자를 감소시키고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금리인상의 영향이 점차 파급되면서 내수도 둔화되고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 상태로는 미래도 밝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일본과 같은 장기정체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998년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온 한국 경제의 성장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면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다. 기술과 경제뿐만 아니라 제도와 정치의 변화까지 포괄하는 전체적인 사회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한 국면이다.
이를 위한 정책적 개입을 위해서는 먼저 한국 경제가 직면한 도전의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으로서는 크게 불평등, 탄소배출, 글로벌 가치사슬(GVC)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세 가지 중에서 불평등과 탄소배출 문제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모두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도전과제인 반면에, 중미 기술패권 경쟁으로 인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는 주로 한국처럼 수출주도성장을 해 온 국가들에게 닥친 대외적 불안정성이다. 사화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와 같은 거대한 사회적 도전들에 대한 응답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곧 불평등을 대폭 완화하는 전환과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자유무역체제 하의 수출주도성장에서 벗어나서 국내 산업연관을 강화하는 한편,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인내자본의 투자로 기술혁신을 꾀하여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입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불평등을 완화할 것인가?
불평등은 성장을 억제한다. 이는 2014년 4월 IMF의 보고서 ‘재분배, 불평등, 성장’ 또는 2014년 12월 OECD의 보고서 ‘소득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실증적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소위 ‘낙수효과 경제학’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신뢰를 잃었다. 불평등이 증가하면 국내소비가 감소하고 경제성장률도 하락한다. 반면에 대외의존도는 증가하고 대외여건에 따른 불안정성이 커진다. 불평등 확대 경향은 OECD 국가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지니계수도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양호하지만 유럽 국가들보다 불평등하게 나타나며 5분위 배율, 10분위배율 등 각종 불평등지표도 중간 이하이거나 바닥권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수출에 의한 해외소비로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지금처럼 대외여건이 나빠질 경우 경제성장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중의 탈동조화 경향으로 인한 해외 시장축소는 부족한 국내 소비여력을 해외소비로 대체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불평등과 경제성장은 음의 상관관계에 있다. 세계은행, OECD. IMF, 유럽연합에서 검토된 ‘포용적 성장’이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평등은 더 심각해졌고 OECD 국가들은 여전히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재분배정책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간층 일자리가 저임금화하고 중위소득이 정체되는 경향이 나타난 신자유주의 이후 탈빈곤을 목표로 하는 선별적인 소득보장 정책은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적다. 그렇다면 사회정책의 목표를 탈빈곤을 넘어 불평등과 소득격차의 획기적 완화에 두고 과감하게 기본소득 정책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소득에 비례세로 10%를 과세하여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면 지니계수는 10% 포인트만큼 개선된다. 누진세의 경우 개선효과s는 보다 더 커진다.
하지만 재분배정책만으로 저성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가설은 분명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 분배의 개선은 소비를 증가시키지만 새로운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등장을 뜻하지 않으며 장기정체 레짐에서 벗어나는 수단도 아니다. 장기정체 레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이중의 혁신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낳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을 위해서는 공공이 대규모 인내자본을 제공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이러한 투자가 특혜경제로 귀착되어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을 막으려면 과실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문제는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중의 전환이 고임금 중간숙련 일자리를 확대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환의 과실을 사회에 되돌리는 제도를 일자리 중심으로 설계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을 중심으로 거시정책을 사고하는 포스트케인지언의 입장은 전체적인 정책조합의 한 요소일 수는 있지만 주축이 되기 어렵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기술혁신을 위한 전제조건은 공유지분형 산업정책이다. 즉 국가는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내자본을 제공하며, 제공된 인내자본에 대하여 지분을 확득하고, 지분수익은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는다. 공유지분형 공공투자는 기술혁신 과정에서 공유지분을 늘림으로써 자산불평등과 소득불평등을 시정한다. 공유지분형 산업정책을 밑바탕에 깔고, 노동법적 제도 개혁을 통해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의 환경을 만들며, 조세형 기본소득을 통해 지니계수를 줄이는 정책조합은 산업전환 과정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과정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공유지분형 공공투자
탄소중립은 전 세계적 도전과제이다. 주목할 점은 생태적 차원의 도전과제는 경제적 도전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구온도 상승을 억제하려면 실질탄소가격이 높아야 하며 탄소배출 없는 재생에너지 기술혁신이 이루어져서 재생에너지 상대가격이 낮아야 한다. 2017년 세계은행은 ‘탄소가격에 관한 고위급 위원회 보고서’(High-Level Commission on Carbon Prices, 2017)에서 파리기후협정의 합의대로 지구온도 상승을 2℃ 이내로 억제하려는 목표가 달성되려면 톤당 탄소가격은 2020년 40~80달러, 2030년에는 50~100달러가 되어야 한다고 추정했다. 2019년 IMF는 탄소세 과세를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규정하고 톤당 25달러, 50달러, 75달러의 3가지 탄소세율을 적용하여 상위 20개 고배출 국가별로 파리기후협정에서 약속한 배출량 감축 목표치 달성 효과를 측정하였는데, 한국은 톤당 최고가격인 75달러를 적용해도 2030년 전망치(BAU) 기준 37%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추정했다(IMF 2019: 7).
세계은행과 IMF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국가는 경제성장에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을 통한 탄소기초가격이 높게 형성되면 국내적으로도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업의 경쟁력이 증가한다. 탄소세를 통한 높은 탄소기초가격의 형성은 탈탄소 경쟁을 촉진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의 국외 유출도 일어날 수 있으며 탄소세율이 낮은 국가의 제품이 대외경쟁력을 가지는 역효과도 등장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한 제도가 유럽연합과 미국이 도입하고자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탄소국경조정은 탄소중립을 위한 국내 기업들의 노력을 보호하는 일종의 무역장벽이 된다. 탄소국경조정은 고배출 국가 한국의 대외여건이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처럼 탄소중립에 미온적인 정책으로 일관한다면 에너지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고 그 후에는 대외여건의 악화에 또 다시 부딪치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정책은 원자력 르네상스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기술에 대한 대규모 공공투자와 탄소세의 도입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조합은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될 경우 가장 효과적인 전환과정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탄소세와 탄소배당의 연동이다. 다른 하나는 공유지분형 재생에너지 투자이다. 탄소세는 탄소기초가격을 설정함으로써 실질탄소가격을 높게 형성하고 시장메카니즘을 통해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탄소세는 최종소비가격에 전가되어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약화되고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 탄소세는 역진적이므로 세율을 올리기도 어렵다. 수요 위축은 막으면서 탈탄소 경쟁은 격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율의 탄소세를 부과하되 세수는 모두 탄소배당으로 사회구성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탄소세와 탄소배당 연동정책만으로 에너지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정하는 것은 시장내재적인 혁신역량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이 주어진 시간대에 가능하려면 시장의 탈탄소 경쟁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공공이 인내자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두 개의 바퀴로 취급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빠르면 빠를수록 경제적으로 유리하며 두 바퀴로 굴러간다면 더 큰 효과를 낳을 것이다.
공공투자 재원은 탄소세수가 아니라 다른 재원이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국채발행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에너지원을 바꾸는 공공투자의 재원을 탄소세로 마련하자는 발상은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을 희생시켜 에너지 전환을 하자는 말이 된다. 아울러 에너지 전환에서도 공유지분형 공공투자를 택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 투자가 아니라 장차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에너지 전환 투자에 대해서는 지분을 획득하여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아야 한다.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면 될수록 탄소배당은 줄어들겠지만 에너지 분야 공공투자에 의한 수익배당은 늘어나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은 불평등을 줄여가는 에너지 전환을 유도한다. 에너지 전환에서도 불평등 문제는 제약조건이 되는데, 곧 사회가 불평등하면 할수록 에너지 전환에 불리하다. 에너지 전환의 공유지분 배당과 탄소배당은 전환을 촉진하면서도 불평등을 완화한다.
공유지분형 산업정책과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는 1998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성장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자유무역체제에서의 수출주도성장이 아닌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미국이 강요하고 있는 Chips 4 동맹에 참여할 것인가로 협소하게 이해한다면 도전과제의 성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하려면 새로 형성된 외부 환경에 단순히 적응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하며, 미래를 기획된 목표에 맞게 창조해 가는 적극적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을 감행할 것이 요구된다. 2022년 2월 4일 발효된 미국의 이노베이션 경쟁법안, 같은 해 8월 9일 발효된 반도체법은 지난 30년 동안 미국이 추구해 온 중국에 대한 방어적 포용전략이 폐기되고 공세적 봉쇄전략이 등장했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산업정책의 큰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연방정부가 기금을 조성하여 미국 내에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반도체 및 첨단과학 인력을 육성하는 민간기업의 투자에 다양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법은 국가가 단순히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자원배분을 통해 적극적인 가치창조자이자 시장형성자로 등장했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개척자형 국가의 등장 못지않게 주목되는 점은 미국 반도체법이 일종의 사회조항과 환경조항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산업정책 수혜기업에 재정 지원의 대가로 초과이윤 공유. 자사주 매입 및 배당 제한, 인재 양성, 소수자 고용, 임금 보장, 지역사회 투자 및 기후·환경 책임 등의 조건을 부과하였다. 재정 지원의 요건의 세부적 내용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모델에 배치되며 국가가 사회적 분배와 생태환경에 대한 조정자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미국의 반도체법은 사회조항에서도 여전히 고용을 넘어선 이익공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여기에서 초과이윤 공유를 전 국민에게 배당한다면, 반도체법은 공유지분형 산업정책으로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기에 한국경제에 절실한 것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예컨대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핵심 분야에서 기술혁신을 위한 공유지분형 산업정책을 통해 미래입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공공투자가 민간투자를 구축할 것이라는 관념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낡은 관념이다. 현실은 오히려 지대에 기초하여 고이윤을 보장하는 독점부문, 자기실현적 기대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자산시장.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거대 도전과제에 대한 투자공백이었으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자본시장의 단기주의(Short-Termism)을 넘어 인내자본을 제공하는 공공투자가 필요하다. 공공투자는 민간투자를 구축하는 대신에 오히려 안정적 기대를 형성하여 투자와 혁신을 유발하고 민간투자를 견인(crowding in)할 것이다.
이와 같은 업무지향적(mission oriented) 공공투자를 공유지분 모델과 결합시킨다면 기술혁신은 불평등이 해소되는 사회적 혁신과정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마리안나 마추카토(M.mazzucato)의 ‘미션 경제학’(Mission Economy)은 일찍이 제임스 미드(J. Meade)가 주장했던 공유지분에 입각한 사회배당 모델과 만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결합된 이 위기를 공유지분형 산업정책이라는 혁신을 통해 사회 대전환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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