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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봄호】[대담] 한국 경제 대전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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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작성일 : 2023.04.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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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한국 경제 대전환의 길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은 가능한가?



참가 : 금민(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나원준(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윤형중(LAB2050 대표),최영준(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사회 :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 대담은 3월 21일 화요일 온라인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오준호 : 안녕하십니까? 대담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본소득당 기본소득정책연구소가 마련한 오늘 대담 제목은 ‘한국 경제, 대전환의 모색’, 주제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은 가능한가?’입니다. 한국은 1960년대에 돼지털과 오징어가 주력 상품인 나라에서 이제 반도체와 문화 콘텐츠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외형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기후위기, 불평등, 저성장, 초저출산 등이 그것입니다. 한국이 과거 성공으로 이어진 경로를 관성적으로 따른다면 미래는 아주 위험하다고 많은 이가 경고합니다.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전환이 필요하고, 전환을 가능케 할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 전환을 막고 있는가? 이것이 오늘의 문제의식입니다. 본격적인 대담에 앞서 참가자 선생님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금민 : 반갑습니다. 조그마한 독립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금민이라고 합니다. 

나원준 : 경북대학교 나원준이고요. 이렇게 불러주셔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윤형중 : 저는 더 작은 연구소인 랩2050에서 일하는 윤형중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영준 :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최영준입니다. 선생님들과 말씀 나누며 배우겠습니다.


한국의 성공 방식이 앞으로도 유효한가?


오준호 :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해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이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성공 방식은 여전히 유효한가’입니다. 나 교수님이 시작해주시겠습니까?

나원준 : 네. 한국의 경제성장은 재벌 체제가 주도하고 모든 자원을 재벌 체제를 지원하기 위해 수직적으로 군대처럼 편성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벌이 머리가 되어 기민하게 국제 변화에 반응하고 한국 정부는 재벌을 집중 지원하는 산업정책을 펼쳤죠. 그 역사를 밟아 2000년대 자동차하고 반도체 영역에서 한국 산업은 기술 경쟁력을 키워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그 성장의 배경에 있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산업체제는 굉장히 큰 사회적 비용, 공동체 희생이란 비용을 발생시켰죠. 

윤형중 : 저는 경제의 위기를 논하기 전에 사회의 위기를 논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위기가 다시 경제의 위기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경제가 나아지면 사회도 나아진다는 믿음에서 사람들에게 (잘 살게 되기까지 참으라고 하는) 동기 부여를 해줄 수 있었죠. 지금은 경제적 상황 개선이 사회의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어 동기부여가 잘 안 되기도 하고, 또 사회의 위기를 오직 경제적인 관점에서 해법을 말하며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최근 저출생 문제에 ‘이렇게 가면 우리나라 경제 망한다, 그러니 애 낳아라’ 하고 접근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사람이 기계냐’하고 반응할 뿐이죠. 


최영준 : 본래 국가주도형 경제와 신자유주의 경제는 많이 다른데 한국에선 개발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면서 ‘개발주의형 신자유주의’ 또는 ‘가부장적 자유주의’가 자리를 잡았죠. 그러나 그 방식이 계속 유효한가 하면 그렇지 않은데, 착취적인 방식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노동자를,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했죠.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장시간 근로체제가 나타나고 주로 남성이 직장에서 장시간 근로하고 여성은 돌봄에 ‘올인’하는 구조가 됐죠. 이 구조를 극복하지 못해 저출산으로 연결이 됐습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래’를 ‘현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끌어다 쓰고 착취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토대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창의적 경제, 지식 기반 경제로 가야 하는데 과거의 관행이 현재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죠. 


오준호 : 가부장적인 자유주의, 개발주의적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한국의 현재를 잘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성장한 방식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들을 희생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지속가능성까지 갉아 먹었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한국 경제의 여러 위험요인 중 무엇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위험인가’ 입니다. 각자의 관점이나 경험에 따라 다르게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기본적으로 공감하시겠지만, 이전 정부도 포함해서 한국 사회의 정치 시스템이나 기업 또는 관료 체제가 문제일 수도 있겠죠.  


최영준 : 지난해 11월에 KDI(한국개발연구원)가 낸 보고서를 보니까 2050년에 대한민국은 성장률이 거의 0%일 거라고 해요. 한국 정부가 탈성장을 추구했던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합니다. 결국 지난 수십 년간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놓쳤던 것들, 곧 돌봄의 가치나 노동의 권리, 경제구조의 양극화 같은 것이 우리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또 탈세계화 상황도 위험요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 세계화 국면에서 국제 선두주자와 후발주자가 협력적 분업을 이뤘다면, 탈세계화 상황에서 더 이상 선두주자가 새로운 산업을 찾아내지 못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 들면서 국가 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처럼 내수가 약하고 수출에 의존해온 나라에겐 매우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나원준 : 한국 경제가 다른 나라와 특히 다른 건 고정자본의 비중이 크다는 겁니다. 국민소득과 비교하면 자본스톡(stock. 물질적으로 축적된 자본) 규모가 굉장히 커요. 반면에 다른 나라에 비해 국민소득에서 내수소비의 비중이 매우 작습니다. 한국 제조업은 일단 첨단장비를 미국이나 일본에서 많이 들여옵니다. 첨단기술에서 그 나라들을 못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첨단설비를 비싸게 들여와 쫙 깔고 미친 듯이 돌리는 겁니다. 노동자에겐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을 강제하면서요. 그러니 작업장 숙련이 안 높아집니다. 숙련이 부족하니 중소 제조업에서는 생산성은 낮습니다. 이윤율 저하 추세도 빠릅니다. 소비 비중을 보면 2천 년대 초 우리나라 GDP에서 소비 비중이 60% 가까이 됐다가 지금은 45% 정도입니다. 소비가 줄어든 이유는 저임금 고착화 때문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임금 격차가 구조화된 것이죠. 하청기업에는 진짜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 많습니다. 저임금은 유효수요 부족으로 이어지죠. 우리 경제는 큰 규모의 물적 자본을 보유하면서 소비는 줄어드는 모습,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서 배고파하는 모습입니다. 


오준호 :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서 배고파하는 모습, 한국 경제에 들어맞는 비유이면서 서글픈 현실인 듯합니다. 


나원준 : 2천 년대 이후 한국은 중국 등에 타고 경제가, 특히 반도체 분야가 엄청나게 성장했어요. 중국이 글로벌 가치사슬에 들어오면서 한국도 변화된 상황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기술력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술 경쟁에서 한국이 사실 위기예요. 일본이나 미국과 비교해 80%밖에 못 따라가고 있고 중국한테도 기술 우위를 많이 넘겨줬습니다. 중국과의 무역수지 적자가 구조화되는 원인 중 하나죠. 이건 우리 경제의 약점과 관련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최종상품에서 국내 생산된 부가가치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적습니다. 60% 정도인데, 다른 제조업 강국들만큼 국내 산업 연관이 부진해 부가가치를 못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 부가가치는 못 만들고 내수 기반은 취약한데 국제 분업망에서 수출기지 역할만 하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진짜 문제입니다. 그러다가 국제 지경학(地經學)적 변화가 오면 새로 위치를 잡기 위해 난리가 나죠. 우리가 계속 ‘누구 등에 타서 국제 가치사슬 속 위치를 잘 잡아 볼까’를 고민하며 살아야 할까요? 재벌 체제에 의존해 그들을 지원하면서 저임금, 양극화 문제를 이대로 둬야 할까요? 그건 마치 영화 ‘설국열차’ 같은 상황입니다.       


금민 : 저는 기후위기에 주목하는데, 그 대응에서 윤석열 정부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제적으로 탄소국경조정이 도입되고 탄소기초가격이 올라 탄소배출량 많은 국가는 수출 통한 성장이 불가능하게 될 겁니다. 지금 골든타임을 놓치면 수년 후 탄소가격 국제체제가 수립될 때 손쓸 방법이 없어요. 실제 몇 달 전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이 시작한 탄소국경조정에 미국도 동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을 겨냥한 거죠. 현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에서도 후퇴하고, 핵발전에 대해선 망상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고 있습니다. 산업부 보고서를 보니까 핵연료 재처리기술에 투자한다고 하더라고요. 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기준에 맞게 신규 핵발전소를 지으려면 핵 재처리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어요. 재생에너지 투자는 중단한 채 핵발전으로 탄소배출량 줄이는 게 옳지 않다는 문제가 있고, 한국이 프랑스나 미국 수준의 재처리기술을 가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에요. 기술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실기하면 5년 후 우리나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겠죠. 


경제 전환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오준호 : 기후위기가 가속화하고 국제 탄소가격 체계가 강화되면 손 놓고 있는 한국은 상당한 대가를 치를 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무서운 일인데요, 저는 이런 실기로 보수정부에서 진보정부로 바뀌면 다행인데 오히려 더 강경한 우파 포퓰리즘 세력이 등장하며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더 퇴행시킬지 걱정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질문을 이렇게 드립니다. ‘지금의 경제 구조나 정책이 계속될 때 어떤 미래가 올 것이며, 그 미래를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의 미래를 전환하는 데 필요한 거시적인 관점을 주실 수도 있고 다양한 변화의 사례를 들어주시거나 혹은 정치의 역할을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변화를 막는 것이 무엇인지 지목할 수도 있겠죠. 


윤형중 : 코로나 첫해에 가천대 정재훈 교수가 “적극적 재정정책이 곧 방역정책이다”라고 말하셨는데요. 재정을 써서 소상공인 지원을 제대로 해야 방역정책도 과감히 쓸 수 있다는 말이었어요. 저는 정 교수의 말을 조금 바꿔 제대로 된 복지정책이 곧 제대로 된 경제정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령화 추세로 인해 지금 GDP 대비 12%의 공공사회지출이 자연스럽게 곧 OECD 평균인 20%까지 올라갈 겁니다. 고령화 추세가 이렇게 빠른 것도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와 관련이 있죠. 그러니 선제적으로 복지지출을 과감히 늘려서 인구감소나 여러 사회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지금처럼 수동적으로 사회지출이 늘어나도록 두면 나중에는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잃게 될 겁니다.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재정과 복지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오히려 재정준칙을 만들어서 예산의 제약을 만들려는 상황이죠.  


나원준 : 저는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1차 분배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복지와 관련한 2차 분배 영역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이죠. 실제로 1차 분배는 결국 단체교섭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겁니다. 단체교섭 제도 같은 노동권 강화 조치 없이 1차 분배는 되지 않죠. 임금 결정에 국가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잖아요.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잘 하도록 국가가 판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단체교섭 제도의 독소조항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실망스러웠죠. 또 금민 선생님 말씀처럼, IPCC 6차 보고서에 나왔듯이 기후위기 매우 심각하고 뭔가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산업정책에선 에너지 전환을 위해 빅 푸시(big push)를 해야 해요. 대대적으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공공 에너지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전망이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공공이 주도해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을 이뤄야 하고 이를 위해 과감한 재정전략을 써야 합니다. 말 그대로 변화를 만들려면 돈을 쏟아 부어야죠. 


오준호 : 나원준 교수님께 질문을 드리면, 요즘 같은 국면에 재정을 투입하면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하지 않느냐는 주류 경제학에서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저는 건전재정이 일종의 신화라고 생각하지만 상당한 이데올로기적 힘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원준 : 저는 우리가 완전고용 경제가 아니고 공급 측 병목현상이 없다면 재정지출이 인플레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죠. 그런데 재정지출 늘리면 무조건 인플레가 온다고 너무 확고히 믿는 입장과는 대화가 잘 안 풀리거든요. 사실 논문을 써도 서로 잘 안 읽죠. 그러니까 저는 증세를 하자는 거죠. 재정지출로 인한 인플레 압력이 걱정되면 증세하면 해결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부자 증세하고 횡재세 걷으면 됩니다. 지금 천연가스를 SK나 포스코가 도입할 때 해외에 법인 세우고 우회도판(도입 판매)까지 하면서 에너지 가격을 올리고 있거든요. 위기 상황에서 폭리를 취하는 기업엔 세금을 더 부과해야죠. 우리가 재생에너지에 공공투자를 확 늘리기로 정하면,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는 증세로 해결하자면서 증세 정치를 하자는 거죠. 

오준호 :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횡재세를 발의했더니 정유사, 은행, 기재부 관료, 보수적 경제단체 등 앞 다투어 반박하는 입장을 내는 걸 보고 사실 신선했습니다. 전에도 증세하자는 얘기를 많이 했지만 이렇게 즉각 사회적인 반응이 오는 건 처음이었죠. 횡재세에 대해 정치적 전선이 생기는 걸 보면서 증세 정치가 정말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교수님도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최영준 :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제 학생들 모두 자기 앞에 불확실성을 느끼고 학부모들도 그런 마음이니 의대 가려고 변호사 되려고 줄을 섭니다. 그 자격증이 있어야 불확실성을 걷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회일수록 다양한 창의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죠. 개인의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하고 그런 역할을 사회정책이 해야죠. 그게 기본소득일 수도 있구요. 또한 나 교수님 말씀처럼 저도 1차 소득분배 중요하다고 보고 또 그런 분배가 가능한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서 기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기술은 20세기를 해체하는 기술이어야 하죠. 우리가 갈색성장을 통해 만든 고철들을 잘 해체하고 다시 녹색으로, 녹색성장이든 탈성장이든 나아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 기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이루면서 산업구조가 바뀌고 1차 분배가 개선되는 방향을 찾아야죠. 


오준호 : 기술을 말씀하셔서,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는 건 챗GPT로 상징되는 인공지능 기술 혁신이 아닐까요. 저도 챗GPT를 종종 다뤄보며 놀라기도 하고 이것이 가져올 변화를 상상해보기도 하는데, 사회적 전환과 사회정책의 관점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최영준 : 챗GPT 말씀하셨는데, 최근에 네이버 하이퍼클로바 개발자나 카이스트 교수님들과 이야기해보니 기술적 특이점이 2~3년 안에 온다고 하더라고요. 상업화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아무튼 특이점이 눈앞에 왔는데 사회제도 변화는 너무 느린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빅 푸시가 사회정책에도 필요하죠. (인공지능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에 조응하는) 과감한 증세와 재분배가 가능한 시스템, 새로운 급여 시스템 등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조정 메커니즘이 없습니다. 빅 푸시가 가능하려면 독재 권력이 있든지 아니면 모두 이성적으로 대화하여 다음 단계로 가자고 합의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 이런 조정 메커니즘이 안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기존 제조업 재벌하고는 못했지만 디지털 기업들과는 기술적 특이점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한번 새로운 협약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가령 사회보험료 징수 시스템을 바꿔볼 순 없을까. 기업들이 법인세보다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회보험료거든요. 사회보험료는 (요율 인상 등으로) 더 늘어날 텐데 지금처럼 사회보험료를 노동자 1인당 급여 기준으로 징수하면 고용주가 고용을 회피하도록 부추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업 이윤을 기준으로 사회보험료를 부과한다든지 해서 자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푸시하고 그들에게 협력을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거죠. 이런 걸 토론해보면서 빅 푸시의 방법을 찾아서 한국 사회 경제 대전환의 모멘텀을 만들었으면 하죠.


오준호 : 최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어떤 사회적 타협에도 다양한 쟁점이 있겠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이 노동시장에서 협상력이 강화돼야 임금도 오르니 협상력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셨는데, 이처럼 자동화가 빨라지면서 협상력의 기반 자체가 허물어지다보니 여기에 대해 정책 토론이 필요할 듯합니다. 디지털 대전환 속에 우리 공동체가 전환을 멈추거나 퇴행하는 대신 더 가속하면서도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 그리고 좋은 성장으로 어떻게 이어지게 할까, 이에 대해 금민 선생님이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금민 : 디지털 전환도 녹색 전환도 저는 공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대규모 공공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대규모 공공투자는 사기업에만 이로운 특혜경제가 됐죠. 정부가 그린딜 같은 이름으로 투자를 했는데 사기업 혜택주는 것으로 귀결되고 여기에 노동환경 개선이나 사회복지 책임을 조건으로 기업과 타협을 한다, 이렇게 설계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과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조직된 노동자의 힘이 강하고 사회적 교섭력도 있을 때는 가능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잔치로 끝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 확실한 것은 국가가 지분을 확보하는 거라고 봅니다. 커먼즈(공유부) 펀드 같은 것을 조성해서 국가가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기업에 지분을 가지자는 거죠. 최근에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분야에 300조를 투자한다고 신문에 거창하게 나왔던데, 보니까 투자는 삼성이 하고 정부는 택지나 산단 형성에 특혜를 준다는 얘기였어요. 이런 방식은 박정희 개발국가의 유산일 뿐입니다. 국가가 커먼즈 펀드를 조성해 재생에너지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투자하고 국가가 산업에 지분을 획득해 수익이 나오면 그 절반은 다시 투자하고 절반은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는 겁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가 ‘미션 이코노미’에서 주장하는 과업지향적 공공투자와 기본소득의 공유부배당 이론을 결합하는 거죠. 


오준호 : 윤석열 정부도, 그 이전 문재인 정부도 거창한 미래 투자와 산업 투자 계획을 밝히긴 했지만 실제 내용은 기업이 잘 해달라는 것이고 정부는 세금 감면이나 규제 완화 같은 보조적 역할에 머물려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론 혁신도 지속가능성장도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금민 : 한국의 재벌체제는 혁신 주도 성장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한국형 챗GPT 만든다고 정부가 떠들었는데 하려면 국가 주도로 공유지분형 산업정책을 밀어붙여야 합니다. 어쩌면 이걸 ‘자유 공산주의’라 부를 수 있죠. 국가가 미션(과업)을 정해 기업들을 참여시키고 재정을 투자합니다. 국가가 시장을 창출하고 기업 지분을 획득해서,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으면서 수익은 배당받아 기본소득으로 나눠줘서 내수를 뒷받침합니다. 이런 선순환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1차 분배도 중요합니다. 일자리가 앞으로 없어진다고 하지만 완전 자동화 경제는 꽤 오래 걸릴 거고 그 사이에 일자리의 질은 계속 떨어질 겁니다. 노동자의 협상력이 중요한데 이건 꼭 조직력의 문제만은 아니고 노동법적 지위를 강화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노조법을 5인 이하 사업장으로 확대하겠다 정도의 얘기만 하는 수준인데, 유럽처럼 산별협약의 효력을 확장한다든지 플랫폼 노동이나 프리랜서 노동을 보호할 수 있게 노동법을 탈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합니다. 그렇게 1차 분배를 개선하고, 공유지분 방식으로 녹색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해서 수익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면 불평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불평등 해소, 기술 혁신, 에너지 전환을 과거처럼 재벌에게 기대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아래로부터 새로운 혁신가들이 해낼 거라는 믿음도 환상입니다. 국가가 과업을 정해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거기에 사회의 혁신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윤형중 : 저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빅 푸시에 동의하는데, 앞으로 5년간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대하기 어렵잖아요. 그렇다고 이 골든타임을 흘려보낼 것인가. 저는 재생에너지를 위한 작은 혁신 사례를 로컬과 시민사회 속에 만들면서 중앙정부도 설득해야 한다, 5년을 흘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자체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의 사례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을 통한 이익공유 체계라든지, 아파트 등에서 재생에너지 관련 협동조합을 만든다든지 하는 방식이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당장은 금융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기존 에너지 가격이 많이 올라 장기적으로는 참여자들이 충분히 이익을 공유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당장 큰 임팩트를 못 줘도 하나둘 모이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준호 : 윤형중 대표님은 아래로부터 혁신의 사례를 모아 시민사회와 중앙정부가 이에 반응하도록 촉진자의 역할을 해주실 것 같습니다. 


윤형중 : 그리고 앞에서 말씀하신 기술적 특이점이 다가올수록, 자본가들은 일자리를 없애려고 하고 여기에 힘의 균형을 회복하려면 개인들이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최영준 교수님이 제시한 것처럼 사회보험료 부과 체계에서 기업 부담분을 노동자 월급 기준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에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논의가 필요하죠. 기업의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는 것이면서 노동자를 분절시키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니까요. 또 인공지능으로 이익을 얻는 기업에게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부여할 것인가? 저희 연구소에선 인공지능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론장을 만드는 기획을 하고 있어요. 사회적 책임을 물으려면 정당성의 근거가 필요한데, 기본소득의 공유부 이론을 적용할 수 있죠. 인공지능 서비스의 기반인 데이터나 인간이 만든 지식은 공유부적 성격이 있으니까요. 


미래를 둘러싼 논투를 더 활발하게


오준호 : 긴 시간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마무리 발언을 부탁드리는데요, 마지막으로 현재 위기의 요인을 추가로 지목하시거나 전환의 방안 가운데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을 말씀해주세요.  


나원준 : 문재인 정부 5년이 끝나고 우리한테 남은 정치적 자산이 너무 없다, 그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이렇게 금방 우리 사회의 방향이 바뀔 줄 몰랐어요. 이런 대전환기에 우리가 앞으로 5년이라는 세월을 이렇게 보내야 해서 답답합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곧 우리 삶의 위기이고, 그에 대한 대안적 비전이 이렇게 저렇게 제시되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주체들의 경험이 쌓이는 거라고 봐요. 어떤 제도 하나로 세상이 확 바뀌지 않고 그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같이 싸운 경험이 누적되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했던 방식도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한테 의지했던 방식도 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변화의 흐름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 스스로 변화 주체로서 힘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형중 : 정치의 역할을 강조할 수밖에 없죠. 문재인 정부가 정책 메커니즘 즉 정책을 통해 문제를 개선하는 접근이 부족하고 나이브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나원준 교수님 말씀처럼 하나의 제도만으로 사회 문제가 극적으로 잘 해결되는 경우는 없거든요. 시민들이 정책을 통해 정치의 효능감을 느끼는 경험을 축적해야 정치도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금민 : 박근혜 정부 말년에 촛불집회를 생각해 보면, 고전적 정치의 ‘폭군 타도’에 멈춰있었다고 봅니다. 본래 정치는 미래를 둘러싼 논투여야 하죠. 어떤 미래를 우리가 만들 것인가 하는 건데 근래에는 미래를 둘러싼 논투는 사라지고 그저 현재를 누가 CEO처럼 잘 관리하느냐 문제만 남았죠. 그러다보니 고전적 정치의 ‘폭군 타도’ 같은 주제만 반복되고 미래를 둘러싼 논투는 사라져, 같은 편이라고 해도 같이 꿈꾸는 미래가 없고 공통의 전망이 흐릿합니다. 한국 사회에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활발하게 토론해야 합니다. 그런 토론과 합의가 없고 모호한 상태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도, 그것이 성장체제의 전환을 담보하기 힘들 겁니다. 사회 전환의 방향에 대해 더 치열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오준호 : 긴 시간 대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은 말씀을 토대로 저와 기본소득당은 정책과 비전을 차곡차곡 만들겠습니다. 민생에 밀착한 생활정책을 만들라는 제안을 가끔 듣는데, 당연히 그것도 필요하지만 정당이라면 모름지기 우리 사회가 20년, 30년 뒤 어떤 미래로 갈지 거시적 비전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고 한 것처럼 큰 목표가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기본소득당은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비전을 가지고 국민들을 만나고 설득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저도 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금민, 윤형중, 최영준, 나원준 선생님과의 대담이 좋은 공부가 되었다는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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