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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커밍 Light 9월호 : 기본소득과 인권, '던져지는' 존재가 아닌 '뛰어드는'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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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본소득정책연구소 작성일 : 2025.09.1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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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인권: ‘던져지는’ 존재가 아닌 ‘뛰어드는’ 존재로


오준호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사명이 있는 나라』,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지은이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페터 비에리는, 자신의 철학 에세이에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를 목격하고 받은 충격에 대해 적었다. 인간 존엄성 침해라고 여긴 비에리는 던져지는 ‘난쟁이’를 찾아가 어떻게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일을 참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당사자는 비에리의 비난을 일축하며 말한다. 

“나는 자발적으로 나선 겁니다. 던져지겠다고 결정한 사람이 나란 말입니다.”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는 말 그대로 왜소증 장애인을 안전 매트 위로 멀리 던지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다. 2000년대 초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 있는 ‘놀이’였다. 프랑스에서는 1995년에 대법원이 인간 존엄성에 반한다는 이유로 대회를 금지했다. 그러자 대회에서 던져지는 역할을 맡는 장애인 바켄하임이 “나는 다른 생업을 가질 수 없는데, 이 일이 금지되면 생계가 끊어진다”라며 유럽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의 이름으로 금지한 대회를, 인권의 이름으로 재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¹


¹ 바켄하임의 일화는 『사람을 옹호하라』(류은숙 지음, 코난북스, 2019)를 참고할 것.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그는 자유로운 걸까


이 일화들은 우리에게 ‘인권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우리는 한 개인의 인격을 다른 이의 유흥 수단으로 만드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개인에게 그런 비인간적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 곧 교육이나 일자리 그리고 적정한 소득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으면 그 말이 옹호하는 인권은 반쪽짜리가 아닐까? 경우에 따라선 인권의 이름으로 시행한 조치가 당사자의 처지를 더 나쁘게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격에 대한 차별 없는 존중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의 보장, 둘 다를 요청한다. 인권 개념 속에 전자의 권리는 자유권, 후자의 권리는 사회적 기본권(사회권)이라 불린다. 흔히 말하기로, 자유권은 지금 당장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사회권은 국가의 능력에 따라 점진적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기본권이 최소 수준도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만 하면 바켄하임은 자유로워진 것일까? 

자유권과 사회권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최근 헌법과 인권 분야에서는 두 권리를 상호 의존적인 통합적 기본권으로 사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² 이 주장에서는 국가가 사회권 보장의 책임을 ‘국가의 재량’이란 핑계로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가는 시민의 자유를 위한 충분한 사회적 기초를 제공할 책임을 져야만 한다. 

필자는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며,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대한민국이 진정한 인권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² 「역량 접근과 헌법」(이은진, 고려대학교 법학과 박사논문, 2023)



인권의 변화: 자유권에서 사회권으로


역사에서 인권의 내용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고대 사회에도 인권의 원초적인 인식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반역자의 시신은 들판에 버려두라”라는 국왕의 법을 거역하고 오빠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다. 이에 범법자로 재판에 세워진 안티고네는 “왕의 법보다 제우스 신의 법을 따르는 게 더 중요하다”라며 자기 행위를 옹호한다. 안티고네 이야기는 정치권력 위에 더 중요한 가치 규범이 있으며 이를 우선해야 한다는 인류의 오랜 인식을 보여준다. 

그 인식은 고대 로마와 초기 기독교를 거치며 ‘자연법’ 철학으로 이어졌다. 자연법 철학은 한 국가의 실정법을 초월하는 보편적 규범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이는 근대 계몽주의와 시민혁명을 지나면서 ‘침해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이 인간에게 있다는 사상으로 이어졌다. 16세기 스페인 주교 라스 카사스가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노예화에 반대하며 부르짖은 논변은 자연권의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원주민은 신이 만든 자연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인에겐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노예로 삼을 어떠한 합법적 권한도 없습니다.” ³

자연권 사상은 근대 인권 사상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종종 ‘신으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뜻인 천부인권이란 표현을 쓰지만, 근대 인권 사상은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에서 찾지 않는다. 이것은 근대 인권 사상과 그 이전 자연법-자연권 사상의 큰 차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사이 약속, 즉 사회적 계약에 근거를 둔다. 그리고 이 약속의 내용은 부단히 깊어지고 넓어졌다.

근대 시민혁명을 거치며 확립된 1세대 인권 개념은 자유권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에는 언론·출판·집회·결사·표현의 자유, 재산 소유의 자유, 함부로 구금당하거나 고문당하지 않을 자유 등이 포함된다. 이 인권 개념은 국가 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국가는 개인의 삶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공권력을 신중하게 사용할 것을 의미하는 ‘소극적 책임’만을 진다. 

2세대 인권 개념은 산업화 시대의 빈곤과 불평등에 저항한 대중적 노동운동에 의해 정립되었다. 2세대 인권의 핵심에 사회권이 있다. 사회권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에 대한 권리’를 가리킨다. 여기엔 노동의 권리, 교육받을 권리,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사회보장의 권리 등이 있다. 자유권과 달리 사회권은 국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국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급부를 제공할 ‘적극적 책임’이 있다. 급부(給付)란, 의무를 가진 자가 권리를 가진 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돈이나 서비스를 말한다. 인권 개념은 이후 3세대·4세대 인권 개념으로 확장하며 환경권, 평화권, 발전에 대한 권리 등을 담았다. 

인권 개념의 확장은 막걸리를 묵히면 식초가 되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 인민의 성난 투쟁의 결과다. 최초의 인권 개념이 자유권 위주인 것은 근대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를 주도한 서구 부르주아 계급이 이를 원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인권을 자유로운 재산 축적의 권리와 동일시하며, 이에 방해되는 대중의 평등 요구는 최대한 외면했다. 부르주아 자유권의 황금시대인 서구 산업혁명기에 대중은 비인간적 노동, 실업, 궁핍으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이 비참함에 맞선 노동운동과 이에 기반한 사회주의 정당이 약진하면서 사회권이 인권 속에 들어왔다.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은 이 투쟁을 반영했다. 「세계 인권 선언」을 작성할 때,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주의 국가 대표들은 사회권을 제외하려고 했고,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국가 대표들은 사회권 없는 인권 선언은 알맹이가 없다고 비난했다. 예를 들어 소련 대표는 “노동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면 그들에게 신문과 인쇄기가 제공되어야 한다”라고 했다.⁴ 반대로 서방 국가들은 자유를 제약하는 ‘사회주의 일당 독재’가 문제라며 맞섰다. 

논쟁 끝에, 대표들은 선언문 제3조~제21조에는 자유권에 해당하는 권리를, 제22조~제27조에는 사회권에 포함되는 권리를 서술하기로 합의했다.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을 통하여, 그리고 각 국가의 조직과 자원에 따라서 자신의 존엄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에 불가결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들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세계 인권 선언」 제22조)

1966년 유엔은 「시민적·정치적 권리 국제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국제규약」을 동시에 채택했다. 두 규약과 「세계 인권 선언」을 합쳐서 ‘국제 권리 장전’이라 부른다. 

권리는 명문화되었으나, 현실 국가는 사회권 보장이 국가의 재량에 달렸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뒷전으로 미룬다. 명문화된 권리를 현실의 조건 속에서 해석하는 사법부 또한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어, 이것이 국가의 의무 방기라는 법적 판단을 얻어내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리하여 사회권은 여전히 자유권에 비해 심각한 공백 상태다. 


³ 『평등,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오준호 지음, 생각과느낌, 2019)

⁴ 『인권은 정치적이다』(앤드루 클래펌 지음, 한겨레출판, 2010)



멈춰버린 사회권: 시대는 인권의 전환을 요청한다


“인권은 아침 식사와 함께 시작된다.” (레오폴드 생고르 세네갈 초대 대통령)

사회권이 인권 개념에 들어오며 현대 국가의 헌법에도 사회권 보장이 명시되었다. 우리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1조에서 36조까지가 사회적 기본권 조항이며 그 핵심은 ‘국가에 적극적으로 급부를 요구할 권리’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사회국가’이고 국민 각자에게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줄 의무가 있다.”(헌재 2002헌마52) 실제로 대한민국은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복지제도를 갖추고는 있다.

‘갖추고는 있다’라고 하는 이유는, 한국 복지제도에 내재한 한계가 도리어 사회권의 공백을 제도화하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에게 맞춰진 사회보험제도는 매우 ‘역진적’이다. 역진적이라는 건 제도의 실제 효과가 본래 취지와는 반대로 간다는 뜻이다. 고용과 소득이 안정된 사람일수록 불안정한 사람에 비해 평소 사회보험 가입률도 높고 보험료도 많이 내므로, 위험시에도 고용·소득이 안정된 사람이 불안정한 사람보다 더 든든히 보호받게 된다. 

사회보험제도가 역진적이라면 엄격한 자격 심사가 필수인 공공부조제도는 ‘반인권적’이다. 생계급여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결핍, 무능력, 단절된 가족관계 따위를 낱낱이 증명하여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게다가 이 방식은 빈곤 완화에 효율적이지 못하다. 2023년 기준, 전체 가구의 15%를 차지하는 상대적 빈곤선 이하 가구 가운데 생계급여 수급 가구는 고작 3%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25년째에도 사각지대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대통령실 주최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현행 복지제도의 신청주의를 두고 “매우 잔인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원받지 못해 사람이 죽고 있다며, 신청하지 않아도 자동 지급할 방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발언은 대선 기간 일어난 ‘익산 모녀 사망 사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가 큰딸의 소득 발생으로 수급 자격을 잃은 모녀(어머니와 둘째 딸)가, 큰딸이 분가하여 모녀에게 수급 신청 자격이 다시 생겼지만 이를 모르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이다. 당사자의 신청이 없으면 도와주지 않는 문제점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지적은 옳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선별주의다. 신청해도 선별 심사에 통과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 게다가 그 관문이 바늘귀처럼 좁다. 

또한 한국의 복지제도는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해서 먹고살고, 노동할 수 없는 사람만 골라내 돕는다”라는 근로주의 원칙에 충실하다. 인간에게 기초적인 소득은 인권의 필수 기반이다. 그런데 인권 보장의 길목에 근로 능력 판정이라는 경호원을 세워, 이를 통과하려는 사람을 탈탈 터는 제도가 인권에 충실하다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는 노동하고 싶어도 관문에서 막히고는 한다. 필자가 인권 토론회에서 만난 한 성소수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소수자가 왜 박봉에도 인권, 문화예술 단체에서 일할까요? 그나마 자기를 드러내도 안전한 직장이니까요.”⁵

이처럼, 국가는 사회권 보장에 매우 불철저한 제도를 고집하여 사회권의 공백을 방치해 왔다. 게다가 법원으로부터 국가가 사회권 보장의 의무에 태만했다는 판단을 구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헌법재판소는 이분법적으로 사회권과 자유권을 구분하고, 사회권에 대한 국가의 보장 책임을 아주 협소하게 해석한다. “국가의 재정 부담 능력, 국민 감정, 제도의 지속 가능성 등을 감안하여, 입법자의 재량을 넓게 인정해야 한다”라는 것이다(헌재 98헌마216). 사회권 공백을 뛰어넘지 못하는 현행 복지제도의 커다란 한계, 사회권에 대한 정부와 사법부의 불철저한 인식에 의해 사회권은 있으나 마나 한 권리가 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국가의 이런 인권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모두에게 제공하므로 선별 원리에 맞서고, 조건 없이 지급하므로 노동할 수 있는 사람만 구제한다는 원칙과 충돌한다. 게다가 엄청나게 큰 재정을 당당히 요청하므로 ‘재정 능력 부족’이란 방패 뒤로 숨는 국가를 도발한다. 만약 우리 헌법이 이처럼 역진적이고 선별적인 제도와 협소한 인권 개념을 고집한다면, 기본소득은 인권에 반하는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권은 움직이는 것이다. 시대는 인권 개념의 전환을 요구한다. 


⁵ 〈2025 광주인권지기 활짝 포럼〉 ‘모두의 권리 기본소득과 인권’에서 석영(광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의 발언.



인권 전환의 방향을 말하다


(1) 국가의 책임: ‘지금 당장’ 사회권 보장에 나설 것

흥부는 배고픔을 못 견뎌 놀부에게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놀부 처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얻어맞는다. 그런데 흥부는 뺨에 붙은 밥풀을 떼 먹으며 그 주걱으로 다른 뺨도 때려달라고 한다. 뺨이 부어오른 흥부가 밥풀로 주린 배를 채우기만 하면 그의 인권이 보장됐다고 할 수 있나?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리는 국가가 인권 보장 책무를 져버렸다고 할 것이다. 

권리는 ‘권리 주체’의 요구를 ‘의무 주체’가 받아들여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그런 점에서 권리를 ‘권무(權務)’로 보자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⁶ 국민의 권리는 반드시 그에 대응하는 국가의 의무를 요청한다. 국가의 의무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존중의 의무다. 흥부의 경우, 국가는 그의 인격과 배고픔에 대한 호소를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로 여겨야 한다. 둘째는 보호의 의무다. 흥부의 존엄성을 제삼자의 침해 행위(여기선 놀부 처의 폭력)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끝으로 충족의 의무다. 비인간적 상황에 내몰리지 않고 식량을 구할 수 있도록, 조건과 수단을 충족해 주어야 한다(그것은 일자리일 수도 있고, 식량과 맞바꿀 돈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식량의 직접 배급일 수도 있다). 

사회권 보장을 그저 국가의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인식을 끝내야 한다. 사회권은 국가가 충족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껍데기뿐인 권리다. 헌법이 사회보장의 권리를 인정했는데, 정부가 예산 제약 따위 핑계를 대며 권리의 공백을 방치할 수 있는가?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국가는 ‘권무’의 관점에서 인권 국가일 수 없다. 인권 국가가 아닌 현대 국가는 민주적 정당성을 지니지 못한다. 인권의 이름으로 국가는 즉각 사회권의 보완과 개선에 나서야 하며, 최소한 그 실행과 재원 확보를 위한 계획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일부 논자들은 사회권은 자유권과 달리 국가의 막대한 재정이 들기 때문에 점진적으로만 실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자유권의 보장에도 재정이 든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국방과 치안에 국가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 않은가? 군,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의 기관은 국가의 필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하면서, 투명하지 않은 내역의 예산을 해마다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관의 활동 결과로 특히 더 보호받는 건 재산 많은 부유한 이들이다. 반대로 사회권의 공백으로 더 고통받는 건 다수의 사회적 약자이다.

자유권도 충분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면, 사회적 기본권만 재정 부담을 핑계로 회피해선 안 된다. 사회권과 자유권 모두 국가가 ‘당장’ 책임지라고 요구해야 마땅하다. 


⁶ 『인권의 대전환』(샌드라 프레즈먼 지음, 조효제 옮김, 교양인, 2009)에서 옮긴이 해설을 참고할 것.


(2) 제도의 전환: 시민권으로서 보편주의

사회보장의 방식을 보편주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선별 심사와 신청주의를 앞세운 제도 대신,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기초적인 안전망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곧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한 ‘제도의 잔인함’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전통적 복지제도를 옹호하는 일부 학자들은 기본소득은 진짜 보편주의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보편주의의 본래 의미는 ‘누구든 위험에 처했을 때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한다. 그 취지는 실업, 질병, 노령 등 사회적 위험에 직면했을 경우 그 이전의 생활 수준으로 최대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 복지제도에선 자신이 위험에 처했음을 성공적으로 입증해야만 지원을 받는다. 누구나 심사를 받을 수 있을 뿐, 누구나 보장을 받지는 못한다. 그것이 보편주의라는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반면 기본소득의 보편주의는 차별 없이 급부를 받고, 급부의 대가로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적 권리이다. 즉 기본소득의 보편주의는 ‘시민권으로서 보편주의’다. 이는 기본소득이 공유부(commons)에 대한 모든 시민의 소유권에 기반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위험에 처하고, 실제로 그런지 입증하고 나서 국가의 자비에 맡겨지는 것이 아닌, 공유부 소유의 정당한 권리이자 사회 구성원에 대한 ‘절대적 환대’로서 기본소득은 주어질 것이다. 


(3) 자유권과 사회권의 통합: 역량으로서 자유

인권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자유권과 사회권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통합적 기본권 개념을 요청한다. 이 통합적 기본권은 ‘실질적 자유를 위한 사회적 기초를 국가에 요구할 권리’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기본권을 이해하는 데 아마티아 센의 ‘역량 접근법’이 유용하다. 센은 국가가 시민의 역량(capability)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센에 의하면 자유란 단순히 방해받지 않을 권리만이 아닌, 기본적인 것을 실제로 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정치 활동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려면 정치 활동이 금지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정치 활동을 이해할 지식, 정치 활동에 참여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즉 정치 활동에 필요한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센의 자유 개념은 ‘역량으로서 자유’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켄하임이 자유로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에서 던져지는 역할 말고 다른 직업의 문이 차별 없이 열려야 하며, 그가 원하는 직업을 수행할 능력을 갖출 기회가 어릴 때부터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역량으로서 자유를 기본권으로 인정한다면, 위험에 처한 다음 선별적으로 구제되는 방식을 고집해선 안 된다. 역량을 발굴, 계발, 육성하는 데는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량을 갖추는 데 어린 시절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서 언제라도,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어느 날부터 제조업 숙련 노동자, 프로그램 개발자, 드라마 조연 연기자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해 보자. 각자의 역량 수준과 상관없이 말이다. 역량은 삶의 전체 과정에서 꾸준히 지원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를 위한 효과적 수단이 될 것이다. 

단, 역량으로서 자유에는 기본소득 외에도 필요한 것들이 있다. 차별금지법도 그중 하나다. 개인의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것이 역량 발전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부산 청년 기본소득 프로젝트가 말해주는 것


국가가 자유권과 사회권의 통합적 기본권 실현이나 역량으로서 자유의 증진을 목표로 하면, 그동안 인권의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 들어온다. 예를 들어, 노동 능력이 있는 청년에게 ‘꿈꿀 자유’를 지원하는 것도 인권 과제가 될 수 있다.

당장 극빈의 삶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꿈꿀 여유가 없거나 자의 꿈에 접근할 수단이 없는 ‘꿈-빈곤’의 상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충분한 기본소득이 그들에게 제공되었을 때, 그들의 삶과 꿈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부산 청년 기본소득 프로젝트’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이것이다. 

부산에서 민간 재단과 단체가 협력하여 설계한 이 프로젝트는 2021~2022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만 18~34세 청년 24명을 선발해 매달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7개월 동안 지급했다. 월 100만 원은 한국에서 실시된 어떤 기본소득보다 큰 금액이다. 19~29세 청년들의 월 아르바이트 시간이 약 60~80시간으로 추산되는데, 100만 원은 생계 아르바이트 노동에 쓰는 시간을 오롯이 그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 

부산 청년 기본소득 프로젝트 연구자들은 ‘꿈-자본’이란 개념으로 이 돈이 가져오는 변화를 분석했다.⁷ 꿈-자본은 꿈이 자본처럼 기능하며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목표 성취에 영향을 준다는 개념이다. 도전적이고 구체적인 꿈을 지닌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나은 인생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꿈-자본 형성은 각자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꿈을 품더라도 응원과 조력을 받지 못하면 꿈-자본 형성이 어렵다. 

월 100만 원의 기본소득은 청년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참여자들은 경제적 압력 때문에 취업에 내몰렸고, 생계 노동과 자신의 꿈 사이에 고군분투하며 번번이 좌절했다. 이들은 기본소득을 받는 동안 “먹고사는 걱정 없이, 설령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를 잠시나마 부릴 수 있었다”라고 증언한다. 무조건적 지원이 주는 안정감은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고 싶은 거 안 하고 참고. 해야 할 것만 하면서 사는 삶이랑 하고 싶은 거 편하게 하고, 해야 할 것도 챙기는 삶은 완전 다르잖아요. 그 차이인 것 같아요. 돈이 모든 걸 다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내 안에 답답한 거랑, 배우고 싶은 열망을 풀어줬으니까. 그거 아니었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죽었을지도 몰라요. 도전도 못해보니까 갈증도 심해졌을 거고.” 
“기본소득을 받아서 더 도전을 해볼 수 있었고, 삶에 대해 의미가 있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만 하던 것을 실천해 볼 수 있었어요. 먹고 싶었던 것을 먹어본다든가. (전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돈하고 시간 투자했는데 별로면 어떻게 하지, 그랬을 것 같은데. (기본소득이 생기고는) 그냥 해보자. 약간 이렇게.” 
“100만 원이면 시급 만 원으로 따지면 100시간이거든요. 한 달에 그 시간이면 충분히 잠도 더 잘 수 있고. 뭔가 삶이 바뀌는 느낌. 그게 가능해서 성적도 잘 나왔거든요. 장학금도 받고.” 
“계속 고민하고 미루던 성격에서, 일단 해보고, 던져보고, 안 될 것 알지만 시도해 보고. 이런 쪽으로 바뀐 것 같아요.” 

7개월의 기본소득으로 청년들은 ‘무조건적 환대’를 경험했다. 능력을 증명하거나 결핍을 내보이지 않고, 신원을 묻거나 자격을 의심하지 않는 무조건적 환대. 무조건적 환대를 경험한 청년들은 기본소득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변화를 이어갔다. 꿈 실현에 필요한 기술과 역량을 꾸준히 습득하거나, 새로운 진로를 발견하거나, 적어도 ‘후회 없는 도전’에 만족감을 얻었다. 가족과 주변에서 응원군을 발견하기도 했다. 꿈-자본을 궤도에 올렸다. 

부산 기본소득 프로젝트는 단순히 생존할 권리를 넘어 ‘꿈꿀 권리’를 인권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그 권리가 실현되려면 생계 노동에 들이는 시간을 유의미하게 되돌릴 충분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⁷ 소개한 연구와 인터뷰는 「청년의 꿈-자본 구성과 확장의 서사: 부산 청년 기본소득 실험 참여자의 경험을 중심으로」(한인정 외, 2023)를 참고할 것. 



기본소득과 함께, 모두를 환대하는 인권 국가로


“사회란 본디 절대적 환대를 통해 성립한다.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사회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015) 

인권은 절대적 환대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인권은 사람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가지기 위해 필요한 권리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의 목록에는 먼저 각자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와 싫어하는 것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권리로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조건, 곧 적정한 의식주와 교육과 일자리와 복지를 보장받는 것이다. 이 권리들이 촘촘히 결합할 때 비로소 사람은 자신의 장소를 사회에 찾을 수 있다.

바켄하임이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가 금지되어 자신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었다며 항변했을 때, 그는 실제로는 자신이 인간답게 살 다른 선택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항의한 것이다. 사회권 없는 자유권은 이름뿐인 권리로 추락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배고픔을 채울 수만 있다면 국가나 제삼자가 밥풀 묻은 밥주걱으로 내 뺨을 때려도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이 여전히 인권의 출발점이다. 즉 자유권과 사회권은 통합적인 권리로 인식되어야 한다. 사회권은 곧 실질적 자유의 기초 조건에 대한 권리이다.

따라서 자유권과 사회권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고 사회권은 마치 ‘있으면 좋은 것’ 그러나 ‘당장 가질 수는 없는 것’으로 여기는 체념적 태도를 끝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는 이분법적 논리를 앞세워 사회권 보장의 책임을 미루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지킨 나머지, 시장 약자의 사회적 몫을 줄이는 불평등 악화에 일조했다. 인권 국가를 목표로 세운 정부라면, 사회권 보장을 즉각적 의무로 선언하고, 실행 계획과 재원 확보 방안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기본사회’라는 국정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기본권 강화의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매우 희망적이다. 하지만 ‘기본사회’의 실현과 성공을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적실한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지금껏 커다란 한계 때문에 사회권에 구멍을 낸 제도들을 과감히 전환하는 계획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 

그 전환의 방향은 낡은 선별주의, 신청주의, 근로주의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시민권으로서 보편주의’를 채택하는 것이다. ‘기본사회’의 중심 과제로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이 분명히 세워져야 한다. 사회 공유부에 대한 만인의 권리에 기반하여, 자격 심사나 근로 의무 없이 각각의 개인에게 최소한의 소득 안전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환대하는 제도이자, 사회권의 공백을 해결하는 데 꼭 필요한 제도다. 

우리는 타인의 의지나 상황에 내몰려 ‘던져지고’ 싶지 않다. 진정한 자발성에 따라 ‘뛰어드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헌법에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기본소득은 뛰어드는 우리를 받아줄 든든한 안전 매트다. 기본소득 도입은 대한민국이 국민 행복을 최우선에 두는 인권 국가임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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