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겨울호 (기본소득 인커밍) 기본소득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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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의 경제학
유승경(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수석연구위원)
기본소득 제도가 ‘공동체의 모든 성원에게 정기적으로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이들이 경제학적인 의문을 품고 있다. 그 의문은 ‘기본소득이 소득불평등을 개선하여 누구도 소득 부족으로 곤란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을 위한 것이라면, 왜 부자도 똑같은 소득을 보장하는가’이다. 이 의문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일정한 재원이 있다면 부자를 제외하고 절약하여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하는 반론이다. 이 의문과 반론이 기본소득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문제 제기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정한 세금을 거둬서 그 재원으로 빈곤한 사람들의 소득을 보조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선별적 소득 보장」이라고 한다. 오늘날, 「선별적 소득 보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한다. 그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제는 공동체의 연대와 유지와 개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선별적 소득 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도 ‘왜 부자까지 소득을 보조하는가’라는 비판을 받는다. 기본소득제가 보다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 의문과 반론에 답해야만 한다.
소득의 분배와 재분배의 의미
현대 사회에서 소득은 원리적으로 생산에 대한 기여에 따라서 분배된다. 한 기업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을 위한 토지가 필요하고 원료나 연료 등 생산수단을 마련할 자본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생산을 담당할 노동력과 기업을 경영할 기업가의 경영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각각의 생산 요소에 대해서 그 기여만큼 소득이 분배된다. 토지에 대해서는 지대, 자본에 대해서는 이자, 노동력에 대해서는 임금, 기업가의 경영능력에 대해서는 이윤이 주어진다. 이처럼 생산의 기여에 대해서 화폐적 보상을 하는 것을 ‘소득 분배’라고 한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적 조건에서 소득 분배는 특별한 교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불평등하게 되어 사회적 결속과 유대를 해칠 수 있다. 그래서 국가는 조세로 마련한 재원으로 소득 불평등을 교정하며, 그러한 교정 과정을 ‘소득 재분배’라고 한다. 그래서 조세 수입으로 가난한 계층을 돕는 ‘선별적 소득 보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세수로 조성된 재원을 모두에게 균등하게 보장하자는 기본소득제에 대한 반론도 강력하다. 그렇다면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왜 한정된 재원을 모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자고 하는 것일까?
기본소득은 선별적 소득 보장과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대부분의 소득 재분배는 조세 수입을 재원으로 삼는다. 그런데 기본소득론은 일정한 재원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논리 전개의 출발로 삼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처음부터 재분배를 목표로 삼고, 재원을 어떻게 조성하고 그것을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용의주도한 정책이다. 기본소득제는 사실 선별적 소득보장의 효과를 그대로 구현할 뿐만 아니라, 다른 부수적인 장점을 가진 이상적인 소득 재분배 제도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살펴보자. 한 사회 내에서 소득계층이 저, 중, 고소득의 3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각 계층의 소득은 <그림 1>;과 같이 1인당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이라고 하자. 그리고 정부는 300만원의 추가적 재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때 기본소득의 방식에 따라 정부가 1인당 100만원을 모든 계층에 지급한다면 소득 재분배의 결과, <그림 2>;의 위에 있는 그림처럼 저, 중, 고 소득계층의 소득은 각각 200만원, 300만원, 400만원이 될 것이다. 그러면 소득 재분배 이후에도 각 계층의 소득은 100만원씩의 차이가 난다. 그런데, 만약 똑같은 재원 300만원을 고소득을 제외하고 중소득 및 저소득에게 100만원과 200만원을 지급하면 <그림 2>;의 아래 그림처럼 모든 사람들은 균등하게 300만원의 소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선별적 소득 보장이 재분배의 효과는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선별적 소득 보장을 지지하고 기본소득제를 비판하는 강력한 논거이다.
기본소득의 논리: 차별적으로 걷어 보편적으로 나누자
<그림 2>;에 나타난 자명한 사실을 기본소득의 지지자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기본소득론자들은 재분배의 재원은 조세를 통해서 조성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세금 징수의 방식을 달리 설정하면 기본소득에 따른 균등한 소득 보장은 애초의 선별적 소득 보장과 똑같은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선별적 소득 보장과 기본소득의 논리를 다시 그림을 통해서 비교해보자. <그림 3>;의 왼쪽 그림과 같이 저, 중, 고 소득계층이 애초에 각각 100만원, 300만원, 600만원의 소득을 받는다고 하자. 이 조건에서 소득세율이 3%라면 총소득이 1,000만원이기 때문에 세수는 30만원이 될 것이다. 그 30만원을 저소득계층에만 나눠준다면 저, 중, 고소득계층의 보조금 지급 이후 가처분 소득은 <그림 3>;의 오른쪽 표처럼 각각 127만원, 291만원, 582만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기본소득 방침에 따라 각 계층에게 모두 30만원씩을 지급하더라도 저, 중, 고소득계층에게 세율을 달리 적용하여 각 계층으로부터 각각 3만원, 39만원, 48만원의 세금을 걷는다면 소득 재분배 이후 가처분소득은 <그림 4>;의 아래쪽 표처럼 선별적 소득 보장과 정확히 동일하게 된다. 이처럼 어떤 선별적 소득보장의 결과라 할지라도 세율을 달리 한다면 기본소득 제도를 통해서 구현할 수 있다.
기본소득 방안은 그 외에도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면 기본소득제의 효과가 선별적 소득 보장 정책의 효과와 동일하다면 굳이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이유가 있을까? 사실 기본소득제는 선별적 소득 보장과 재분배 효과가 동일하다는 것 외에도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선별적 소득 보장에 비해서 행정적 비용이 줄어든다. 선별적 소득 보장은 조세 징수뿐만 아니라 보조금 지급 시에도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이 소요된다. 이에 반해 기본소득제는 소득 지급 시에는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이 들지 않는다. 둘째, 기본소득은 저소득층에 대한 낙인 효과를 배제할 수 있다. 저소득계층은 선별적 소득 보장을 받기 위해서 가난을 증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셋째, 기본소득은 선별 대상자의 도덕적 해이를 배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별 과정에서 소득 지원 대상이 되기 위해서 자력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을 기피할 수 있지만 기본소득은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되기 때문에 선별되기 위해서 취업을 기피할 이유가 없다. 그 외에도 행정 착오를 배제할 수 있으며, 자격 심사 기준의 모호함에 따른 불공정한 결과를 배제할 수 있다.
세율을 조정하면 기본소득의 제도는 더욱 개선된다
그런데 세율을 보다 정교하게 조정하면 기본소득 제도의 효과는 더욱 개선된다. <그림 4>;의 아래 표처럼 애초의 선별적 소득보장 제도와 똑같은 효과를 내기 위하여 세금을 차별적으로 걷었다. 그 결과로 저, 중, 고소득계층의 소득세율은 각각 3%, 13%, 8%가 되어 중산층의 조세 부담율이 고소득계층보다 높아지는 문제가 나타났다.
하지만 소득세율을 모든 계층에게 일정하게 9%로 책정하는 비례세를 적용하고 모든 계층에게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도록 90만원의 재원을 마련하여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그림 5>;의 첫 번째 표처럼 중소득계층까지 가처분 소득이 증대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소득세율을 현재의 소득세 추세대로 저, 중, 고 소득계층에 대해서 각각 0%, 6%, 12%의 누진 소득세율을 적용한다면 <그림 5>;의 아래 표처럼 소득 재분배의 효과는 더욱 개선된다.
복지 혜택이 넓을수록 복지 재원은 증가한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논리 중에는 ‘최근 들어 행정이 발달하면서 선별의 행정비용이나 낙인효과를 얼마든지 배제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기본소득의 여러 장점을 반박하는 논리도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제를 세율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것처럼 선별적 소득 보장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기본소득 제도의 더욱 큰 장점은 기본소득 제도로 복지 혜택을 폭넓게 할 수록 장기적으로 복지 재원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이 쟁점은 과거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무상 급식을 둘러싼 논쟁과 유사하다. 학생들의 급식을 저소득계층에게는 무상으로 제공하고 고소득계층에게는 유상으로 제공한다고 하자. 그럴 경우에 고소득층은 급식비를 부담할 때마다 저소득층의 몫까지 부담한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에 급식을 위한 재원을 늘리고자 하는 시도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현상은 타국의 복지제도에서 자주 관찰되는데 이를 ‘재분배의 역설’이라고 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복지 혜택의 선별주의가 강할수록 복지 혜택이 집중되어 국민의 정책 지지도가 낮아지고 그래서 재분배정책에 투입되는 재원이 정체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나라(A국과 B국)가 동일한 재원을 갖고 있고 A국은 선별 보장을, B국은 기본소득 보장을 선택하는 경우에, A국의 저소득층은 선별 보장을 통해 B국의 저소득층보다 유리한 보장을 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복지 규모가 정체되어 B국의 저소득층보다 불리해질 수 있다.
또 다른 기본소득, 공유부 배당
이처럼 기본소득제는 소득 재분배의 방법론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이다. 그런데 소득 재분배 차원이 아닌 ‘모두가 응당 누려야 하는 정당한 소득’으로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논의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공유부 배당 기본소득’이다. 도대체 모든 이가 똑같이 누려야 하는 소득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므로 먼저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살펴보자.
오늘날 세계에서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기본소득제의 유일한 사례는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 실시되고 있는 ‘알래스카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의 ‘영구기금배당제(Permanent Fund Dividend)’이다. 알래스카 주 정부는 주 소유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 판매대금의 일정 부분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그 기금의 운용 수익을 1982년부터 현재까지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매년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1982년 첫해에 1인당 연 1,000달러를 지급했으며 2022년에는 연 3,284달러를 지급하는 등 41년간 연평균 1,949달러를 지급했다. 알래스카의 기본소득은 그 재원을 조세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다. 주 소유의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의 판매 대금이 기본소득의 궁극적 원천이다. 유전이 주 소유이기 때문에 주민 전체의 공유부(common wealth)라고 할 수 있으며 알래스카의 기본소득은 ‘공유부 배당’이다.
공유부와 공유부 배당이란?
그러면 공유부가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부(wealth)는 지속적으로 화폐 소득을 낳는 유무형의 대상이다. 그리고 공유부(common wealth)는 ‘다수가 공동으로 소유권을 갖는 부’를 말한다. 소유권은 ‘어떤 대상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으로서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에서 나오는 수익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것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된다. 따라서 공유부는 ‘다수가 공동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사용권, 수익권, 처분권을 갖는 부’이다. 알래스카의 사례에서 주 소유의 토지에 위치한 유전은 모든 주민이 소유한 공유부(common wealth)의 한 예이다.
그리고 소유권이 사용, 수익, 처분의 권리로 구성된다고 했을 때 사용권과 처분권은 그에 합당한 절차에 의해 정해진 바에 따라 행사될 수 있을 것이며, 수익권은 소유권자들에게 수익을 균등하게 할당함으로써 충족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소득의 할당이 바로 배당이다. 그래서 공유부 배당은 ‘다수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부에서 기인하는 소득을 소유권자들에게 균등하게 배당하는 제도’이다. 즉 알래스카 연구기금의 배당이 바로 ‘공유부 배당’이다.
공유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공유부로는 우선 자연이라는 재산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소유권은 그것을 창조한 자가 갖는다. 그렇다면 자연은 인류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존재했으므로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계 모든 문화에서 자연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로 인식되어 왔다. 물론 자연적 재산들도 그것을 개간하거나 개척한 개인에게 소유권이 주어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누구에게도 배타적으로 귀속되지 않으면서 생산적 역할을 수행하는 자연적 재산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이미 개인 소유권이 확립된 자연적 재산도 그것을 개간하거나 개척한 사람들의 노동 기여와는 별도의 자연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토지가 있다고 하자. 토지의 가치에는 노동(개간)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공적 가치와 처음부터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인 자연적 가치가 있다. 그래서 모든 문화권에서 자연적 재산(예, 토지)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로부터 나오는 일정한 화폐적 소득을 공동체의 몫으로 남길 의무가 주어져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 사회에서 부를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자선의 의무와 토지의 자연적 가치 부분이 기여한 바에 대한 보상으로서 공동체에 납부할 토지세이다. 그래서 기본소득 사상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영국의 토마스 페인은 토지에 대한 자연적 가치의 대가인 토지세를 재원으로 하여 공동체의 모든 성원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 방안을 제안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는 공동체 성원 모두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재산을 원천으로 삼아 알래스카처럼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운동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메인 주에서는 2004년경에 생수업체의 지하수 독점 개발에 대해 소액의 세금을 책정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알래스카 모델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자연적 재산을 보편적 배당금으로 분배하려는 몇몇 국가의 실험들이 있었다. 몽골은 광업에서 얻은 수입을 보편적 배당의 방식으로 국민과 공유한 바 있다. 그리고 아직 배당금을 지급하지는 않지만 인도의 고아 주는 2019년에 광물을 미래 세대가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공유 유산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국가 광물 정책을 공표하기도 했다.
탄소세와 탄소 배당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화석 연료의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량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이른바 ‘탄소세와 탄소 배당 방안’도 생태계의 정화 기능이라는 인류에게 주어진 공유부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탄소세’는 화석 연료의 판매 가격에 수수료를 추가하여 화석 연료의 수요를 시장 원리에 따라 감축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탄소세를 부가할 경우에 소비 지출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저소득계층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탄소세 옹호론자들은 탄소세로 조성된 재원을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탄소 배당제’를 함께 제안하고 있다. 즉 ‘탄소세 및 탄소 배당제’는 화석 연료의 사용을 억제하는 동시에 그에 따른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안이지만 공유부 배당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화석 연료를 이용하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며, 생태계의 정화 시스템이 배출된 탄소를 정화한다. 이처럼 자연의 정화 시스템은 화석 연료에 의한 전기 생산이 지구의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자연의 정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화석 연료에 의한 전기 생산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탄소 배출량에 부과된 탄소세로 조성된 재원은 자연 정화 시스템이라는 공유부의 기여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 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어야 한다. 실제로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는 탄소세 수입의 일부를 중·저소득층 가정의 세액 공제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런 사례는 점차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자연적 재산의 생산적 기여를 공유부 배당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항목도 무척 많다. 앞서 언급한 광물자원, 지하수뿐만 아니라 현대 통신의 결정적 생산 요소인 주파수의 사용료나 민간 매각 대금 등은 자연의 선물로서 공유부의 훌륭한 후보들이다. 그래서 자연자원의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마련된 재원을 기금화하고 기금 운용 수익을 배당한다면 세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일정한 기본소득을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정책의 성과 공유를 통한 배당
공유부가 단지 자연 자원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경제적 생산에는 집합적 사회제도와 과학/기술과 같은 공동 자산들이 큰 기여를 한다. 따라서 그런 요소들의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모두 기본소득 재원의 유력한 후보들이 될 수 있다. 그중에서 정부가 국가의 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추진하는 산업정책의 성과를 공유하는 방안도 공유부 배당의 훌륭한 재원이다.
산업정책은 ‘경제(와 사회)의 미래에 더 나은 전망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산업부문을 중심으로 경제의 생산구조를 재편하는 정부의 선별적 개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산업정책에 힘입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고도성장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다른 나라의 정부들도 대부분 산업정책의 일환으로서 민간 기업의 혁신을 재정으로 지원하여 기업 경쟁력의 향상을 돕고 그에 기초하여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왔다. 하지만, 산업정책의 직접적 수혜는 성공한 기업의 주주와 직접 고용된 근로자에게 집중됨으로써 자본 소유와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면 공공 소유의 자산을 재원으로 삼아서 전 국민이 지분을 갖는 투자 기금을 조성하고, 그것을 산업 전환과 혁신을 뒷받침하는 자본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기금의 수익을 전 국민에게 배당하는 ‘위험 감수와 보상 간의 일치’를 실현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산업정책 수행의 대표적 나라로 정부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 1위로서 2022년 기준, GDP 대비 1.09%인 29.8조 원에 달한다. 그 외에도 산업정책으로 많은 재정 투입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정부가 혁신의 위험을 분담하면서 그에 부합하는 보상을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 지원을 위한 재정 투입을 투자 지분으로 확보하여 위험 흡수에 부합하는 보상을 취한다면 공유부 배당의 안정적 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다
모든 이에게 일정한 소득이 보장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단순한 공상이나 막연한 이상이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공동체의 유대와 개인의 기본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선별적 소득 보장’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현실에서 보다 정교한 설계만으로도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공동체의 모두에게 귀속되어야 마땅한 공유부의 소득이 일부 계층에 배타적으로 독점되고 있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정당한 몫을 배당’하는 정의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경제학적으로 타당한 기본소득의 보장이 가능하다.
* 이 글은 지난 11월 2일 국회에서 열린 ‘기본소득가을학교’ 제2강을 맡아 강연한 유승경 수석연구위원이 강연 내용을 토대로 재작성한 원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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